<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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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탈출(18) 『아니,이 양반이 지금 잠이덜 깨셨나.사람 놀래켜 놓고 시비를 하는 거요,뭐요?』 『사설늘어 놓기는 형씨가 한술 더 뜨는 거 같구만 그러슈.』 숙소로들어가려고 그의 앞을 지나치는데 사내가 명국의 팔을 잡는다.
『뭐여? 내가 무슨 헐 지랄이 없어서 오밤중에 자네헌테 사설을 늘어놓는다는 거여? 놀랬으니 놀랬다고 하는 거고,그러면 미안스럽게 됐수다 한마디 하면 되는 건데.』 사내가 잡고 있는 팔에 힘을 준다.명국이 사내의 얼굴을 마주보았다.옆방을 쓰는 사내인 거 같은데 어둠 속이라 누구인지 분명치가 않다.
『일 보쇼.피차 바쁘니깐.』 돌아서는 명국의 팔을 으스러지게잡았다가 밀치며 사내가 거칠게 말했다.
『너 낮에 좀 보자.어디서 요렇게 아래 위 턱이 없는 새끼가굴러 들어왔어.』 저벅저벅 사내가 변소로 향했다.별놈 다 보네.중얼거리면서 명국은 숙소로 들어섰다.왜놈만이 아니다.곁에서 걸리적거려 편한 날 없이 만들기는 조선놈이라구 다를 게 없다니까. 혼자 중얼거리며 명국은 자리에 와 누웠다.
왜 이 모양인가.늘 그렇다.여기와서도 구순하게 넘기는 날이 하루도 없다.그저 저 잘났네,너 못났네.쉴 날이 없이 조선사람끼리 아옹다옹이고 여차하면 여기 저기서 투덕투덕 손찌검들이 오간다. 서로 마음 달래며 어렵더라도 참고 지내면 편할 것도 어느 것 하나 그냥 넘어가는 것이 없다.어이구,웬수 잡것들.그 꼴들 보기 싫어서 혼자 떨어져 있으면 또 그걸 가지고 시비다.
자넨 뭐가 그렇게 잘 나서 혼자 옆으로 빙빙 도느냐다.
잠을 자 둬야지.잠이 약인데.눈을 감으면서 명국은 몸을 구부리며 모로 누웠다.그러나 그렇게 잠을 자려고 하면 할수록 정신은 점점 더 말똥말똥해진다.몸을 바로 하며 명국은 눈을 뜬다.
내가 왜 도망을 치겠다는 건가.그때나 이때나 뭐가 달라진게 있다구 떠나겠다는 건가.밤낮으로 조를 바꿔가면서 탄 캐러 내려가는 것도 마찬가지,먹고 입는 것도 그렇고,더 나아진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더 나빠진 것도 없다.그런데 왜 길 남이랑 발을함께 놓겠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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