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광장>젊을때 하나라도 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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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누구나 공평하게 또 한살씩 먹는 새해 문턱.
우리 집안에서 부르는 요즈음 나의 별명은「미나리」가 돼버렸다. 미나리,어머니,나날이… 한글 타자를 쳐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소위 글쟁이랍시고 정신만 진보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몸과기능이 따라줘야지 원고지 열 장만 휘갈기고 나면 팔이 시큰거리는데 고전적이라는 핑계로 연필만 붙들고 있을거냐,컴퓨터 워드프로세서를 두 달만 익히면 평생 작업이 편할텐데… 그 래서 작심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시작한 한글타자 연습.자리익힘.낱말.문장,산넘어 산인데 주의집중해 쳐야 할 낱말 대신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는 인생의 편린들.그 순간 머리속은 텅비고 문자판 위의 손가락은 정지되어 통 진전이 없다.젊 은 자식들은 언제 연습했냐 싶게 단계가 팍팍 오르고 숫제 하늘에서 눈이 내리듯 흘러 내려오는 단어들을 콩 튀기듯 찍어낸다.「미나리」만 치고 있어 주눅이 든 나는 그래도 할말이 있다.『내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고 너무 꽉 차서 그렇다.』인 간의 과정을 도화지에 비교해보자.하얀 종이에 인생의 시간이 흐르면서 자꾸 무엇이 그려지는것.어린날 흰 종이는 단 한번 그려도 선명하지만 갈수록 검게,까맣게 칠해져서 어른이 되면 여백이 없어 아무리 새겨도 잘 나타나지 않는 것.운 전연습을 보라.10대는 십일,20대는 이십일이면 될 것을 만약 50대라면 오십일이 걸린다는 것이다.그러하니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한가지라도 더 해놓지 않으면 결국연체 이자 불어나듯 귀한 미래는 소모되고 말 것이.「미나리」에서 소 모되는 내 아까운 시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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