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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명옥살이1년>4끝.기소부터 판결까지 검증기능 실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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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경찰이 수사를 잘못했다면 이를 바로잡아야 하는 곳이 검찰이다.또 검찰의 잘못은 법원에서 고쳐져야 한다.
그러나 金基雄순경 사건에서 검찰이나 법원의 역할은 전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죄명을 폭행치사에서 살인으로 바꾸었으니 오히려 검찰.법원이「살인범 만들기」에 앞장섰다고도 할 수있을 정도다.
◇검찰=형사소송법(196조:사법경찰官吏)과 검찰청법(4조:검사의 직무)은「범죄수사는 검사가 경찰을 지휘.감독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검사의 직무중 가장 기본이 경찰의 송치사건 처리다.검사들 스스로 이 업무를「지게질」이라고 낮춰 표현한다.경찰에서 사건을 받아 그대로 법원에 넘긴다는 뜻이다.
金순경사건은 폭행치사죄가 적용됐지만 송치받은 곳은 서울지검 강력부였다.일반 형사사건은 형사부로 배당되는 게 보통이지만 피의자가 경찰관인데다 살인의 성격이 짙어 강력사건으로 분류됐기 때문이었다.
검찰이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는 송치된 날인 지난해 12월11일과 14일,15일,26일등 모두 네차례.
이가운데 주임검사가 직접 신문한 것은 26일의 마지막 신문 한차례뿐 나머지는 모두 일반직인 계장이 했다는게 金순경의 주장이다. 조서는 시종일관 범인임을 전제로 한 유도질문만으로 되어있다.金순경이 범행을 부인했기 때문에 질문이 대부분이고 답변은아주 짧은 게 특색이다.이런 조서는 검찰의 「수사실무지침」에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지적돼 있다.
조서마다 金순경은 끝머리에 반드시『억울하니 진실을 밝혀달라』고 애원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검찰은 단 한번도 金순경이 주장하는 부분을 귀담아듣지않았다.金순경은 목이 터지도록 현장에서 없어진 李양의 수표추적과 목걸이 확인을 거듭 요청했지만 허사였다.
그러나 주임검사는 당시 상황과 과정등에 대해 일체 함구하고 있다. 결국 검찰은 증거를 하나도 보강하지 못한 채 죄명만 살인으로 바꿔 기소했다.1차 구속기간(10일)을 채우고 한차례 연장해 구속만기일 하루 전날이었다.
◇법원=징역 12년을 선고한 1,2심 재판부는 각각 4차례씩심리를 했지만 형식.절차갖추기에 바빴을 뿐「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려는 노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형사재판에서 변호인의 변론은 대개 두가지로 나뉘는데,하나는 범행자체를 부인하는 무죄 주장을 하는 것이고 나머지는 범죄사실을 시인하되 정상론이나 법률다툼을 하는 경우다.
이 사건의 1,2심 변호인인 李明和.潘憲秀변호사는 처음부터 각종 증거를 제시하며 무죄 주장을 폈지만 재판부는 이를 철저히외면했다.
李변호사는 법정에서▲사망추정 시각 오차 가능성▲현장에서 수거된 혈액형이 金순경과 다른 정액이 묻은 휴지▲침대시트위 제3자의 족적▲길가에 한장씩 버렸다는 수표가 한꺼번에 돌아온 점등 수사과정의 의문들을 지적했다.
또 潘변호사는 여기에다▲金순경이 파출소에서 동료들과 고스톱을친 것은 도저히 살인후의 행동으로 볼 수 없고▲없어진 여관방 열쇠에 대한 여관주인의 진술이 엇갈리는등 참고인 증언에 문제가많다는 주장을 했으나 모두 배척당했다.
문제는 재판부가 검찰의 공소사실을 토대로 예단을 하고 있었던점이었다.수사기관은 한달 이상 피의자 조사를 해 이미 많은 증거를 수집한 상태이기 때문에 가뜩이나 형사재판은 피고인이 불리할 수 밖에 없다.거기에다 재판부의 예단까지 겹 칠 경우 빠져나올 길이 전혀 없다는 것.
오판을 방지하려면 한번의 재판때 30~40건씩 심리해야 하는과중한 업무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서울고법의한 판사는『시간에 쫓겨 정작 기록을 기계적으로 검토할 수밖에 없는 실정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아내 무죄를 가려내는 것은「족집게 점쟁이」에게나 실현가능한 얘기』라고 우울해 했다.
〈金泳燮.鄭鐵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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