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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이쓰는가정이야기> 아이들의 산타 걱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아빠,산타클로스가 어떻게 들어와요.』 딸아이는 아파트 내부를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내게 물었다.3년전 이맘때 우리는 10년간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옮겨 아파트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당시 일곱살이던 딸은 선물을 잔뜩 가진 산타할아버지가 우리 몰래 들어올 굴뚝이 아파 트에는 없다는 사실이 무척 걱정되었던 모양이다.미국에 살던 집에는 벽난로에 굴뚝이 있었는데 말이다. 『아빠,여기는 굴뚝이 없잖아요.』 『우리 아파트는 높으니까 산타할아버지가 루돌프사슴을 타고 날아오셔서 여기 발코니로직접 들어오실거야.우리 문을 열어놓고 자자.』 『아빠,한국집에는 왜 굴뚝이 없어요.』 『옛날 아빠가 너만했던 시절은 한국집에도 굴뚝이 많았단다.부엌 아궁이에 불을 때면 연기가 방바닥 밑을 지나 굴뚝으로 나갔었지.그러니까 바닥이 따뜻했겠지.그걸 온돌이라고 부른단다.저녁이 되면 엄마들이 밥을 짓느라 동네 굴뚝마다 파르 스름한 연기가 피어나곤 했지….』 건축을 전공한 아빠가 설명해주어도 딸은 통 이해가 되지 않는 눈치였다.
지난 30여년동안 아파트를 많이 지어 살게 되면서 잃어버린「우리것」이 많다.연기 피어오르는 굴뚝이 없어졌고 김장독 묻을 땅을 잃었다.
처마와 처마가 이어지는 골목길도 잃어,일곱살난 막내아들이「대장」은 알겠는데「골목대장」은 무어냐고 물어올지 모른다.또「낙수」는 어떻게 설명하랴.
아내와 나는 귀국 이삿짐을 챙기며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맞부닥칠 「우리것」들을 어떻게 설명해주어야 할지 걱정했었다.그런데 그것은 기우였다.3년이 지난 지금 우리 아이들은 구슬치기할 골목길이 없어도 아파트 주차장에 그득한 자동차 들 사이를 누비며 롤러스케이트를 잘도 탄다.
비오는 날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수 소리는 못듣지만 에어컨 호스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이유를 궁금해할 줄은 안다.그런데 이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로서는 잘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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