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환희와좌절>11.배구선수 하종화,불운이여 안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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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내 나이 스물하고도 다섯,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은지 만5년이 지났다.서른살까지는 운동을 계속할 계획이니 그때까지 국가대표로뛸수 있다면 딱 절반이 지난 셈이다.
그런 뜻에서 제7회 아시아선수권대회(9월.태국)준결승에서 일본에의 승리는 개인적으로 일대 전환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간의 미묘한 감정이 오히려 실력보다 우선하는,그래서 영원한 맞수라고 해야 할 일본과의 韓日戰은 항상 진다고도,그렇다고 이긴다고도 확언할 수 없는 양상을 띤다.
내가 태극마크를 달고있는 동안에도 매년 한 두차례씩 대결했고승패는 반반이었다.
지난해 대통령배대회가 끝나면서 나는 어깨부상을 했고 오랜 슬럼프를 거치는 동안 이대로 선수생명이 끝나는 것이 아닌가하는 주변으로부터의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내심 자신이 있었고 선수생활을 하는 한「체력이 달린다」는 소리를 듣고싶지 않아 나는 다시 태어난다는 각오로 노력했다. 바로 이 시점에서 일본과의 대결에서 승리,개인적으로 전성기의 컨디션을 되찾는 시기와 맞아떨어졌고 우리 대표팀의 상승분위기와도 일치,우승까지 차지하는 감격을 안았다.
반대로 지난대회 우승팀 일본은 상대적으로 부담감을 갖고 있는게 역력했다.우리는 이날 첫세트 초반 나카가이치(26.1m93㎝)를 막지 못해 4-1로 뒤졌으나 중반부터 수비에 치중,12-9로 뒤집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자만이었을까.연이은 공격범실과 서비스포인트까지 허용해15-12로 내줬다.
공격보다 수비.벤치의 요구와 선수들의 생각은 일치했고 2m8㎝의 오다케의 고공강타도,그리고 신예 이즈미카와(1m96㎝)의좌측강타도 우리 코트를 뚫을 수는 없었다.내리 3세트를 따내 3-1로 역전승.
4년만에 되찾은 아시아 정상.그것은 한국배구의 부활이자 곧 나자신의 부활인 셈이었다.
두달뒤 우리는 일본에서 열린 그랜드챔피언컵대회에서 3-2로 역전패했다.
그러나 나는 결코 한국이 실력에서 일본에 패한 것은 아니라고생각한다.우리 대표팀은 아시아선수권대회후 각 팀으로 돌아가 국내에서 개최된 실업배구대제전에 출전했다가 이 대회를 위해 재집합했다. 배구는 팀웍이 무엇보다 중요한 경기다.
일본은 그대로 팀웍을 유지,호주에서 열린 친선대회에 출전하는등 팀훈련을 계속해왔다.그 차이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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