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평화적 해결 “청신호”/급진전하는 북·미 접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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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미 3단계 회담 전제조건 후퇴/「선 사찰 후 남북대화」로 입장정리
한동안 극한 상황으로 치닫을 조짐을 보이던 북한 핵문제가 최근 잇따른 북미접촉에서 급진전,평화적인 해결가능성이 한층 밝아지고 있다.
북한과 미국은 최근 두차례의 뉴욕 실무접촉에서 평행선을 달려오던 영변 핵시설 사찰대상과 범위,그리고 3단계 고위급회담 일정에 「합의에 가까운」 의견접근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현재 뉴욕의 북미협상이 진행중이라 진전내용에 자세한 언급을 피하고 있지만 『북한도 핵문제를 대화를 통해 풀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며 지금은 이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여 나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고 있다.
정부는 뉴욕접촉이 「해볼만한 게임」이라고 말해 문제해결의 돌파구가 마련되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숨기려하지 않는다.
정부 당국자가 『북미간 뉴욕접촉이 빈번하게 열리고 있는 것은 양쪽의 입장차이가 별로 크지 않다는 점을 시시한다』면서 『늦어도 내년 1월중에는 북미 3단계 고위급회담 개최에 관한 합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 것은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
북한과 미국은 11월23일 한미 정상회담이래 23일까지 모두 다섯차레의 뉴욕접촉을 갖고 이견조성을 벌여오다 서로 조금씩 양보함으로써 타결점을 찾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핵문제 타결의 접근은 그동안 한미가 북미 3단계 고위급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국제핵사찰 수용 ▲남북대화의 진전 가운데 한미가 남북대화를 굳이 고집하지 않음으로써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미는 북한이 최근 핵문제의 본질적 문제가 아닌 남북대화를 전제조건에서 제외하면 핵사찰을 전면 수용할 용의가 있다는 제의에 따라 여러차례 정책협의를 통해 남북대화부분을 약간 양보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정부는 이달초 김영삼대통령과 클린턴 미 대통령간에 전화회담이 있은후 두차례 고위정책회의를 열었는데 핵문제를 타결하려는 미국의 제의를 깊이 있게 검토했던 것으로 관측되었었다.
북한은 그후 20일 뉴욕에서의 미국과의 접촉에서 협상의 걸림돌이 돼온 5메가와트 원자로와 방사화학시설에 대한 핵안전조치의 계속성을 보장하는 수준으로 사찰에 응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북한은 대가로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북미 3단계 회담일정 확정과 팀스피리트훈련 중단,미국측 핵위협의 제거와 이들의 일괄타결을 제시했다. 이에 반해 한미는 북한이 줄곧 요구해온 북미 3단계 고위급회담과 관련해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요구하는 수준의 사찰수용 ▲남북대화를 재개해 의미있는 협의를 할 것 등 2개 사항을 전제조건으로 제시,당초보다 요구수준을 낮췄다.
정부 당국자는 『북미 3단계 고위급회담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IAEA의 사찰이 이뤄져야하고 남북대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대전제에는 전혀 변함이 없다』면서 『그러나 우선 순위로 볼때 IAEA의 사찰이 더 중요하다』고 밝혀 사실상 「선 IAEA 사찰,후 남북대화」 입장을 정리했음을 시사했다.
정부는 북미간 실무접촉이 현재처럼 잘 풀려나가면 IAEA 사찰팀이 앞으로 2∼3주내에 북한에 들어가 임시 및 통상사찰을 하고,동시에 한미 양국은 팀스피리트훈련의 중단발표와 함께 3단계 회담의 일정과 의제를 제시하는 수순을 밟아 나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때 남북대화는 북한이 재개하겠다는 약속만 해놓고 넘어갈 가능성도 없지 않으나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면 경제협력 등 대북관계를 발전시킬 방침을 정부가 이미 밝혀놓고 있어 핵문제 해결후 남북대화는 상당히 진전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한국은 북한 핵문제의 「당사자 해결원칙」에 따라 남북대화를 중시하는데 반해 북한은 핵문제는 미국과의 대화를 통해서만 해결한다는 주장이어서 막바지에 이같은 미묘한 입장차이가 어떻게 절충될지 관심이다.
게다가 북한은 과거에 늘 그래왔던 것처럼 문제가 풀릴 조짐이 보이면 딴청을 피우고 위기에 처하면 돌파구를 찾기 위한 유화책을 내놓았던 점에 비춰 상황을 너무 낙관하기는 아직 이르다.<박의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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