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인질 28일째] 김경자·김지나씨, 풀어준다던 '아픈 여성' 아닐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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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무장세력은 21명의 한국인 인질 가운데 왜 김경자.김지나씨를 먼저 풀어줬을까. 탈레반 대변인을 자처하는 카리 유수프 아마디는 애초 "선의 표시로 병세가 위중한 여성 인질 2명을 조건 없이 석방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13일 오후 외신 카메라에 잡힌 두 사람의 모습은 건강에 별 이상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아마디가 앞서 "여성 2명이 아파 먹거나 걸을 수 없다. 이들이 움직이려면 누군가의 부축이 필요하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했던 것과 달리 걷기에도 무리가 없어 보였다. 풀려난 인질 가운데 한 사람은 이날 AFP통신과의 전화 통화에서 건강 상태를 묻는 질문에 "우리는 괜찮다"라고 말했다.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없었던 억류 상황에서 병세가 갑자기 호전됐을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따라서 김경자.김지나씨가 애초 탈레반이 언급했던 '아픈 여성 인질 2명'이 아닐 수 있다는 지적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달 29일 본지와 인터뷰했던 이지영(37)씨와 함께 민가에 억류돼 있던 이들이다. 당시 이씨는 "같이 있는 3명(나머지 한 명은 피살된 고 심성민씨)의 건강이 괜찮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우선적으로 풀려난 진짜 이유는 뭘까. 현지 전문가들은 이들이 가즈니시로 데려가기 좋은 지역에 억류돼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본지 통신원 알리 아부하산(가명)은 이들과 함께 있던 심성민씨가 살해된 이유와 관련, 탈레반 가즈니주 부사령관인 물라 압둘라의 말을 인용해 "심씨가 억류된 곳이 시신을 도로변에 유기한 뒤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좋았기 때문"이라고 전한 바 있다. 따라서 김경자.김지나씨 역시 이동의 용이성 때문에 우선 석방 대상으로 선택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당시 심씨 시신이 발견된 곳은 이번에 두 사람이 적신월사에 인계된 가즈니주 아르주 마을(가즈니시에서 남동쪽으로 15㎞ 거리) 도로변이었다. 탈레반으로부터 두 사람을 넘겨받아 아르주 마을까지 데려온 부족 지도자 하지 자히르(32)는 13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인질들이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가즈니시에서 남서쪽으로 7㎞ 떨어진 다이크 지역 콘다르 마을 출신임을 고려할 때 인질들은 이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억류돼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탈레반이 자신들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가 전파되길 노렸을 수도 있다.

이지영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차이(차).빵.과일을 먹는다" "특별히 위협을 받지 않는다"고 말해 이들 일행이 외신과 인터뷰한 다른 인질 그룹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은 대접을 받는 것으로 짐작됐다. 따라서 탈레반이 "인질 대접을 잘했다"는 선전 효과를 통해 향후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고 이들을 풀어줬을 가능성이 있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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