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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눈의 역사 눈의 미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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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역사 눈의 미학/임철규 지음, 한길사, 2만2천원

"눈은 감옥이다. 본다는 것은 인식한다는 것이며, 인식한다는 것은 전체 중의 부분만을 파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눈의 역사는 틀짓기, 비틀기의 역사다."

이런 파격적인 주장을 내건 이는 임철규(연세대.영어영문학)교수다. 그는 20년 전 '눈의 미학'이란 논문을 써 눈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을 선점했다고 스스로 밝힐 정도로 자부심 강한 학자다.

임교수는 눈의 죄를 강도 높게 비난한다. "눈이 있는 한 인간세계는 파국을 면할 길이 없다. 종교 용어로 바꿔 말하면 인간에게 구원은 없다"는 것이다. 절대적인 신이란 존재도 인간이 볼 수 있기 때문에 빚어진 인식의 결과물이다. 천둥.번개를 보고 제우스란 신을 만들어낸 것도 그런 맥락이다. 그는 이런 논지를 문학.미술.신학.철학.신화의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심도 있게 펼치고 있다.

'쳐다본다'는 의미를 가진 그리스어 동사 스켑테온(skepteon)의 명사형은 스켑시스(skepsis)다. 그런데 스켑시스에서 유래한 스켑티시즘(skepticism)의 의미는 회의, 회의론이다. 그렇다면 눈이'본 바'는 믿을 수 없는 '회의'의 대상이 아닐까. 그러나 인간은 부분에 불과한 '본 것'을 전체로 알고 반목과 시기를 일삼는다. 인간 세계의 갈등도 눈이 만들어낸 믿음 때문에 야기된 것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임교수의 논의는 인식의 문제에만 멈추지 않는다. 원래는 생명과 풍요의 상징이었던 메두사가 여성을 폄하하는 남성중심 이데올로기로 인해 '악한 눈'으로 조작됐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부분이나 반 고흐의 '자화상' 등의 작품에 나타난 눈의 표정에서 예술가의 의식이 읽힌다는 대목 등은 문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제공해 준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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