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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측이 먼저 대통령 전용차 제의 '달라진 북한' 대내외 알리려는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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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뉴스 분석 남북이 14일 노무현 대통령의 육로 방북에 합의한 것은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남북 관계를 말해준다. 7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방북했을 당시에는 서해 직항로를 이용했다. 북한 군부의 반발과 경호 문제 때문이었다.

정부 관계자는 "북측과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한 이후 육로 방북을 전제로 회담을 준비해 왔다"고 밝혔다. 2000년 1차 정상회담 때 김 전 대통령이 서해 직항로를 연 것에 맞먹는 새로운 방북 코스를 열기 위해 육로 방북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 대통령의 전용 차량이 분단 62년 만에 북녘의 산하를 달리게 됐다. 서울~개성~평양 250여㎞는 3시간 남짓을 달려야 한다. 1차 정상회담 때 김 전 대통령은 김포공항에서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하기까지 67분이 걸렸다.

정부는 한때 경의선 열차 편도 검토했다고 한다. 하지만 북측 구간의 철도 설비가 낡아 시속 40㎞를 넘지 못한다는 취약성을 감안해 '열차 카드'를 포기했다는 후문이다. 서울~평양 간 도로는 2003년 10월 유경 정주영체육관 준공식 때 남한 대표단 1000명이 오간 전례가 있다. 이날 준비접촉에 나온 최승철(통일전선부 부부장) 북측 수석대표는 과거 장관급 회담에 참석했을 때에 비해 훨씬 적극적인 태도였다고 한다.

특히 대통령 전용 승용차 편을 이용하는 방안은 북측이 먼저 제의했다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번 정상회담에 거는 기대를 방증하는 것이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6자회담의 진전 등 한반도 정세의 변화를 읽은 김 위원장이 국제 무대로 나아가는 징검다리로 이번 회담을 보고 있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정부가 40년 만의 홍수 피해를 본 북한을 지원하는 방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도 이런 흐름에서 풀이된다.

이날 실무접촉에서는 방북 경로뿐 아니라 대표단 규모, 선발대 파견, 신변안전 보장 문제 등도 일사천리로 합의했다. 1차 회담의 경우 준비접촉만 다섯 차례나 열린 것과 대조적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김정일 위원장의 신임을 받고 있는 최승철 부부장이 준비접촉 대표로 나온 만큼 결과가 좋을 것으로 예상했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1차 회담 때의 경험도 큰 역할을 했다. 정상회담 준비기획단장을 맡고 있는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2000년에 매뉴얼(지침서)을 워낙 잘 만들어 놓았더라"고 말했다.

대표단 규모는 1차 회담 때보다 20명이 더 늘어났다. 그 몫은 경제단체 대표와 기업인 등 경제인에게 할당될 것이란 전망이 유력하다. 사회간접자본시설(SOC) 건설 지원 등 대규모 경제지원이 검토 중인데다 노 대통령이 '남북 경제공동체' 구상을 언급한 것이 그런 관측에 힘을 보태준다.

하지만 정상회담 의제 조율은 원론적 수준에 그쳤다. "김만복 국가정보원장과 김양건 통전부장 간의 합의서에 기초한다"는 식으로 얘기됐다. 결국 모든 의제가 두 정상의 의중과 회담 상황에 달려 있다는 의미다.

예영준.정용수 기자, 개성=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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