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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 싫어하는 원칙론자/정 부총리의 「됨됨이」와 정책스타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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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2면

◎시장경제 신봉… 거침없는 언행/5공초 숙정뒤 야인생활 13년
소신과 경륜·자신감 등으로 소문난 정재석 교통부장관이 우리나라 경제를 총괄하는 경제부총리에 올랐다.
지난 10월18일 13년만의 「야인」 생활에서 벗어나 교통부장관으로 컴백한 정 부총리는 취임 첫날 국정감사장에서 다른 장관들과는 달리 의원들의 질문에 정면으로 대응,예스와 노를 명확히 해 「소신있다」와 「너무 강하다」는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정 부총리가 무사안일이 판치고 있는 공직사회와 일반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것만은 사실이었다.
『단 하루를 하더라도 맡은 일은 철저히 해야 한다』는 말을 공·사석에서 자주했던 정 부총리는 올들어 육·해·공에서 일어난 잇따른 대형참사의 와중에서 교통부장관으로 취임,많은 기대를 받아왔다. 정 부총리의 영전소식이 전해지자 교통부 직원들이 아쉬움을 표시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정 부총리늘 직접 만나보면 단구에 까무잡잡하고 주름진 얼굴,술이 많은 백발 등 영락없 시골노인 인상을 준다.
하지만 성격은 학구적·논리적·직선적이며 격식을 차리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엄격하고 철저한 김학렬 전 부총리가 능력을 인정,발탁했고 고 박정희대통령이 하버드대에 연수중인 그에게 사람을 보내 불러다 일을 맡길 정도로 촉망받았던 경제관료다.
교통부장관때 부하들이 자신을 부를때 「님」자를 붙이지 말라고 하거나 세부적인 업무는 국장을 전결로 처리하도록 한 것도 이같은 성격을 말해준다.
가끔 진의를 오해받기도 하고 사람에 따라서는 다소의 거부감을 갖게 하기도 하지만 그의 거침없고 자유분방한 언행이 오랜 경력과 관록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전주사범을 거쳐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뒤 57년 고등고시 외교행정과에 합격,부흥부(현 경제기획원 전신)에서 경제외교를 맡으면서 관료생활을 시작한 정 장관은 『나는 사범학교 출신으로 학문과 교육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으며 관료보다 학자라는 평을 더 좋아한다』고 말한곤 했다.
32세때는 경제기획원 종합기획국장에 오르고 교통부와 경제기획원의 기획관리실장,건설부와 경제기획원 차관 등 경제부처를 오간뒤 79년에는 상공부장관에 올랐다.
정 부총리의 깐깐하고 원칙에 충실한 성격을 나타내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상공장관 때인 80년 5·17직후 신군부가 3권 장악내용의 국보위 설치령을 국무회의에 올리자 『헌법기관을 어떻게 대통령령으로 고치느냐』며 국무위원 가운데 유일하게 불참했다.
곧이어 할당식으로 내려온 공무원 숙정자 명단에 잘못한게 없고 유능한 일부 간부들이 끼어있는 것을 보고 반발,협조하지 않아 당시 상공부의 숙정자가 가장 적었다고 한다. 이같은 잇따른 「비협조」 때문이었는지 정 장관은 80년 7월 차관이하 공직자 숙정발표때 장관으론 유일하게 포함됐다.
관직을 그만둔뒤 부인 박진숙여사(56)와 단둘이 살며 외국어대학에서 「조직론」과 「전략론」을 강의해온 정 부총리는 모사립대로부터 총장직을 제의받았으나 연구시간을 빼앗길 것 같아 거절했다고도 한다. 무남독녀인 가영씨(27)는 미 인디애나대에서 음악을 전공한다음 출가했고 민자당 정장현의원이 동생이다. 4억원 내외의 재산을 공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행정의 총수에 오른 정 부총리가 그동안 질과 양에 있어 엄청난 변화를 이룬 우리 경제를 어떻게 요리하고 이끌어 나갈지 주목된다.<김석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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