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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타인의 고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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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수전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이후, 8천5백원

훌륭한 사진 한 장은 전쟁의 흐름까지 바꿔놓는다. 역사를 기록하고 시각 예술을 창출하는 힘이 어우러져 사람들을 쉽게 감동시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쟁의 잔혹함을 전하는 사진은 거기에 담긴 '타인들'의 고통을 들여다보는 창이 될 수 있을까. 미국의 유명 작가며 예술평론가인 수전 손택(71)은 단호하게 "아니다"고 말한다.

손택이 지난해 발표한 '타인의 고통'은 현대 소비사회에서 대량 복제되는 잔혹한 이미지들이 인간의 감수성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고발한 책이다. 전쟁을 매우 인상적으로 다룬 사진을 구체적으로 검토하면서 그 사진이 일반 사람들에게 고통을 전하는 힘과 한계를 풀어낸다.

손택은 버지니아 울프의 '3기니'를 이야기 전개의 도약대로 삼았다. 울프는 전쟁을 비난한 이 책을 통해 전쟁에서 남자와 여자가 '우리'가 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울프와 마찬가지로, 손택은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과 그 살육의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전쟁이 난 곳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실에 위안을 느끼는 사람이 결코 '우리'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심지어 손택은 이미지 과잉의 사회가 되면서 후자가 전자의 고통마저 하나의 스펙터클로 소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진의 본질은 어떤가. 거기에는 정보와 뉴스를 전함과 동시에 예술성까지 확보하려는 사진 작가의 욕망과 그 현장에 대한 촬영을 허락한 측의 정치적 계산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래서 사진으로'재현된'현실과 실제 현실 사이의 괴리는 엄청나게 크다. 예컨대 1945년 2월 미국 해병대가 이오 섬에서 일본군을 내쫓고 성조기를 꽂는 장면(조 로젠탈의 '이오 섬에서의 국기게양')도 그렇고, 1950년대 사랑과 낭만이 넘치는 파리의 모습을 전하는 로베르 두아노의 '시청 앞에서의 입맞춤'도 연출로 드러나 사람들을 실망시켰다. 68년 사이공 대로에서 베트콩으로 보이는 사람을 총살하는 장면 또한 카메라를 의식한 연출이었다.

사진의 영향력은 새로운 매체의 탄생에도 불구하고 지속될 것인가. 사진이 그림의 지위를 상당히 잠식했듯이, 특히 비디오가 사진의 지위를 상당히 빼앗지는 않을까.

이에 대해 손택은 사진의 지위에는 전혀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시각적으로 머리에 담을 경우 사진이 기억의 기본 단위가 된다. 인간이 기억하는 역사적 사건들도 비디오 화면이 아니라 스틸 사진이다. 프레임에 고정된 기억, 그 기억의 기본적인 단위는 어디까지나 단 하나의 이미지인 것이다."

고통을 담은 도상학의 역사로 눈을 돌려보자. 아득한 옛날에는 신이나 인간의 분노가 낳은 고통이라야 재현될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받아 그림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현대로 내려오면서 고통받는 육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인간의 욕망은 나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만큼이나 격렬하게 나타났다.

프랑스 작가 조르주 바타이유의 경우 1905년에 중국의 한 죄수가 백 조각으로 찢겨 죽는 형벌을 당하는 사진 한 장을 늘 책상 속에 간직했다고 한다. 바타이유는 "이 사진은 내 삶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황홀하기 그지 없으면서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이 이미지, 고통의 광경을 담은 이 이미지는 평생 나를 사로잡았다."고 말했다. 악마성이 거의 엽기적이다.

마지막으로 전쟁이 끊어지지 않는 지구촌에서 역사의 방관자가 아니라 역사의 목격자가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손택의 제안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연민의 정은 자신의 무고함을 입증해 주는'알리바이'가 돼 오히려 깊은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식으로든 그 고통을 당하지 않는 나의 특권이 타인이 겪고 있는 고통과 연결돼 있다는 인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의 대표적인 실천적 지식인으로 꼽히는 손택은 9.11 세계무역센터 폭파 사건이 있은 뒤엔 미국 사회의 반이성적인 분위기와 '테러와의 전쟁'의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정명진 기자

<사진 설명 전문>
에디 애덤스가 1968년 당시 베트남 사이공에서 찍은 ‘처형당하는 베트콩 포로’사진. 전쟁의 고통을 전하는 이런 이미지는 현대 들어 과잉 생산되면서 하나의 스펙터클로 소비되고 있다고 손택은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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