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 위주 재편되는 경제질서/7년 걸린 「UR타결」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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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냉전때보다 개도국 위상 더 약화/한국경제 성패는 경쟁력 확보에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의 우루과이라운드(UR)가 얼마나 야심적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재론할 여지가 없다. 세계경제의 판이 완전히 다시 짜이게 됐다.
비록 7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소모되긴 했으나 세계 1백16개국을 UR라는 한 울타리속에 집어넣었다는 것 자체가 감히 엄두도 못낼 일이었다. 냉전체제 붕괴가 이같은 엄청난 경제적 결집을 가능케 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UR를 추진했을 당사자들도 이처럼 커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농산물과 서비스를 GATT 체제에 포함시키자는 것이었는데 급기야 공산품 전반에 걸친 무역자유화 바람이 가속화하면서 「고양이를 그리려다가 호랑이를 그린 격」으로 비약된 셈이다.
이로써 세계경제는 한동안 「UR체제」라고 불리게 됐다. 이 UR체제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되어 나갈지는 아무도 확단할 수 없다. 너무도 야심적이라 그에 따른 불확실성도 사방에 널려 있다. 그동안의 협상과정에서 드러난 각국의 첨예한 이해충돌로만 봐도 세계 경제질서의 향후 변화가 얼마나 격렬하게 진행되어 나갈지를 짐작케 한다.
우선 정치적 냉전체제의 종식이 세계 경제질서에 가져다주고 있는 변화가 이번 UR 협상에서 여실히 드러났다는 것이 제네바의 협상 실무자들 사이의 공통된 소감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처럼 「거대하고 과격한 경제개혁」에 대한 합의도출이 도저히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과격한 경제개혁은 자연히 더욱 치열한 경제전망을 수반할게 틀림없다. 이같은 협상은 이번 협상과정에서 여실히 입증됐다. 시청각산업·항공기산업 문제를 놓고 벌인 미국과 EC의 막바지 전투는 GATT 수석대표자 회의를 21시간 동안이나 지연시켰다. 그러고도 결국 합의에 실패했다.
무역전쟁이 치열해질수록 강대국 위주로 경제질서는 짜여갈 수 밖에 없다. 유럽국가들이 EC로 통합하면서 미국과의 협상력이 눈에 띄게 강화되었고,결과적으로 UR에서 가장 많은 실속을 챙긴 것이 대표적인 증거다.
상대적으로 힘없는 나라,개도국 그룹들은 상대적 불리를 감수해야 했다. 과감한 무역자유화 자체가 이들로서는 짐스럽다. 개도국의 특수성이 다소 감안되기는 했어도 공산품의 대폭적 관세인하를 비롯해 농산물의 관세화,서비스시장 개방과 투자 및 지적재산권의 보장 등 대부분 선진국들이 원하는 바를 성취한 것이 UR 협상의 근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과거 냉전체제하에서보다 개도국들의 협상력이 현저히 약화됐다는 것이 지배적인 분석이다. 브라질이나 파키스탄 등은 협상과정에서 『UR 보다는 차라리 위기를 택하겠다』는 극언도 서슴지 않을 정도로 불만을 터뜨렸었다.
보따리 크기로 보면 역시 미국이 챙긴 것이 가장 크다. 원래의 의도대로 서비스시장과 지적소유권 문제를 GATT속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을뿐 아니라,자기네들이 경쟁력있는 공산품을 중심으로 관세를 아예 없애버리는 무세화 등 대폭적인 관세인하를 이룩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어떤 결과라도 나쁘지 않다. 경쟁력에 자신이 있는 만큼 공산품 교역에 있어서는 어떻든 장벽이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좋다. 조용히 이삭만 챙기면 되는 것이다. UR체제가 어떤 개혁과 변화를 추구하더라도 수용할 태세가 충분히 되어 있고,또한 그렇게 되는 것이 일본경제를 더욱 건강하게 하는 길이라고 믿고 있다.
한국의 손익계산서는 어떤가. 여러부문에서 아직도 개발도상국의 분류 속에 남아있기를 주장하고 있으나 한국경제가 지향하는 바를 생각하면 분명한 자가당착이다. 이미 망신을 당했다. 지난 89년 국제수지 흑자국임을 자랑하면서 농산물 보호규정을 벗어던졌다가 이번 UR협상에서 곤욕을 치렀던 것이 바로 그러한 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일본이 상정하고 있는 시나리오가 우리에게도 적용되도록 하는 것이다. UR가 주도해주는 무역장벽 완화의 이삭을 최대한 수확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한국경제 자체의 경쟁력이 문제다. UR 타결에 따른 세계교역량 증가와 한국경제에 정의 효과를 얼마나 끼칠지는 오직 경쟁력에 달렸다.
UR가 국내 경제에 미칠 충격은 금융실명제 정도에 비교할 수 없는 일이다. 당장,그리고 구체적인 경제개혁을 「개방과 경쟁」이라는 명제아래 강요하게 될 것이다. 그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개방의 파장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날 축산업 부문에서부터 나타날 것이다.<제네바=이장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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