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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학협동 상­미국(선진교육개혁:2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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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스탠퍼드대 기술료 수입 1억불/「유전자복제」로 5천만불 벌기도/일 기업들 눈독… 미정부 규제 나서/“첨단두뇌 활용” 기업 앞다퉈 투자/“교육 우선” 교수 「바깥일」 시간제한
미국을 일컬어 「산학협동의 천국」이라고 한다. 그러나 역설적이지만 천국은 「지옥같은 경쟁」 덕분에 건설되었다.
71년 스탠퍼드대 음대의 존 초우닝 교수는 새로운 방식의 전자악기를 발명했다. 그때까지 유행하던 애널로그식 전자악기와는 차원이 다른 주파수변조(FM) 방식의 뮤직 신시사이저였다.
초우닝 교수의 발명품에 가장 먼저 주목한 곳은 스탠퍼드대의 기술사용권업무 담당기관인 OTL(office of Technology Licensing)이었다. OTL은 71년부터 5년간 미국내 악기회사를 두루 찾아다니며 세일즈에 나섰다. 가는 곳마다 푸대접이었다. 일류기업들도 기존 애널로그 방식에만 집착,이 신기술을 외면했다.
FM방식의 가능성을 믿어준 곳은 일본의 악기업체 야마하였다. 야마하의 기술진은 초우닝 교수가 직접 연주해 보인 전자음을 들어본뒤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막대한 투자를 하기로 결정했다.
75년 스탠퍼드대는 야마하에 신기술의 독점사용권을 주는 계약을 체결했다. 초우닝 교수는 75∼82년 일본을 20차레나 오가면서 제품화에 협력했다. 현악기·피아노 소리에서 드럼소리까지 자유자재로 내는 야마하의 전자악기는 곧 전세계를 석권했다. 야먀하는 물론 떼돈을 벌었다.
초우닝 교수와 스탠퍼드대도 로열티를 짭짤하게 챙겼다.
스탠퍼드대의 OTL이 69년 설립된 이후 지난해까지 벌어들인 각종 로열티는 총 1억1천1백만달러(약 8백88억원). 이중 FM 뮤직 신시사이저는 1천3백90만달러로 유전자 복제기술(5천3백40만달러)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돈을 번 품목이 되었다.
미국의 산학협동은 기업·정부와 대학간의 상호이익을 전제로 한 정교한 시스팀을 자랑한다. 프로젝트의 단위도 우리와 다르다.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원으로 스탠퍼드대 전자공학과에 유학,박사학위를 곧 받을 예정인 강호규씨(32)는 『한국에선 몇천만원대 프로젝트도 큰 건인데 여기에선 10억원대 프로젝트가 흔하다』고 말했다. 『실험용 소모품이 필요하면 대학원생도 은행에 입금된 자기 팀의 프로젝트 머니(연구자금)에서 신용카드 등으로 빼내 사용하고 사후에 보고,정산하면 된다』고 강씨는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의 연구비가 교수의 호주머니에서 주먹구구식으로 드나드는 실정. 포항공대·서울대공대 등 극소수만이 연구비 중앙집중관리제를 시행중이다.
미국의 산학협동 규모나 기술수준을 우리가 당장 따라가기는 어렵다. 그러나 철저한 내부 경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국제경쟁력을 축적하는 시스팀은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던진다. 한국대학의 문제는 열악한 형편보다 오히려 「안이함」에 있는 것이 아닐까.
MIT대 이공계 학과 교수는 6백명선. 『MIT가 외부에서 따오는 캠퍼스 연구비는 연간 3억5천만달러인데 인문사회계 교수들은 프로젝트를 거의 안하니까 이공계 교수 6백여명이 1인당 연간 50만달러(4억원)씩을 벌어야 대학의 유지되는 셈』이라고 이 대학 서남표교수는 설명했다.
프로젝트를 따온 교수는 62%라는 살인적(?)인 간접비(오버헤드 코스트)를 대학에 낸뒤 나머지 돈으로 연구해야 한다.
○주당 10시간내로
연구에 필수적인 대학원생 활용을 위해서는 학생 1인당 연간 4만2천달러(1천3백60만원)꼴로 학비·생활비를 대주어야 한다. 물론 지도교수의 부담이다.
산학협동의 교육기능을 우선시하는 대학당국의 노력은 특히 돋보인다. 대학은 어디까지나 교육기관이라는 원칙에 철저하다. 스탠퍼드대의 경우 교수가 개인적으로 외부기업의 일을 돕는 것은 주당 10시간 이내로 제한되어 있다. 그 이상 「외도」하고 싶으면 아예 대학을 떠나라는 뜻이다.
『우리 입장에서 산학협동은 학생들의 실력 향상이 첫째다. 기업에 기술을 이전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다.』
스탠퍼드대 OTL의 존 샌더 박사도 이 점을 잊지 않고 강조했다.
산학협동이 상품화로 이어질 경우 특허·라이선스 업무와 제품개발 전략 등을 기업과 논의하게 된다. 스탠퍼드대의 OTL 같은기관이 이런 역할을 전담하고 있다. 자기 대학 교수가 기업에 이용당하거나 행정처리에 시간을 뺏기는 것을 막아주는 셈이다. 제품화에 성공할 경우 발명자는 로열티의 3분의 1을 보장받고 소속학과와 대학이 3분의 1씩을 나누어 갖는다.
그렇다고 해서 기업이 자선사업을 하는 것은 아니다. 스탠퍼드대가 있는 서부의 실리콘밸리 지역이나 동부의 MIT대 주변엔 대기업은 물론 수많은 벤처 캐피틀(모험자본)들이 대학가에 안테나를 대고 투자할 신기술을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대학 주변에 포진
스탠퍼드대 부설연구소인 CIS(Center for Integrated Systems)는 반도체·컴퓨터 관련 산학협동이 활발한 곳. CIS 사무국장 리처드 라이스 박사는 『미국이 지금 불경기라지만 기업들은 오히려 불경기이기 때문에 자체 연구개발보다 우리 연구소에 끈을 대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기업 입장에선 대학의 두뇌·시설을 비교적 싸게 이용할 수 있는데다 졸업생 유치에도 유리하다는 이점이 있다.
자본·기술의 국경이 무너지는 세계적 추세는 산학협동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이 면에서 일본기업의 미국 진출은 특히 두드러진다. 산학협동의 국제화 흐름에 재빨리 눈뜬 일본 기업들은 MIT대에만 무려 4백여명의 「방문연구원」을 심어놓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연방정부가 이들에 대한 규제를 MIT대에 요구하고 나섰다.
『현재 한국산업은 모든 전선이 교착상태다. 어느 한 곳이라도 송곳같이 뚫어야 한다. 산학협동을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절박감을 느껴야 한다.』
『W이론을 만들자』라는 저서를 낸 이면우교수(서울대 공대)는 실적도,위기의식도 없이 산학협동 관련 세미나만 요란한 우리 풍토를 개탄했다.
◎한국 포항공대/국내대학중 산합혁동시스팀 제일 먼저 정비/현대자와 손잡고 작년 무인자동차 개발성과
지난 87년 개교 당시부터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했던 포항공대는 산학협동시스팀을 서울대 공대보다 앞서 정비한 대학으로 평가받고 있다. 포항공대 산학협동의 중심고리는 산업과학기술연구소(RIST). 독립법인인 이 연구소는 포항공대와 인력교류·시설공동 활용·연구정보교류 등에 관한 협약을 맺고 있다. 대학 교수진 1백93명중 94명이 RIST의 연구원을 겸하고 있다.
대학원생 8백여명중 교육조교(TA)와 순수과학분야의 연구조교(RA) 등 2백여명에게는 대학당국이 1인당 연 5백만원 가량의 학비·생활비를 지원하지만 나머지 6백여명은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하는 담당교수가 학비를 대는 책임을 지고 있다고 백성기 기획실장은 설명했다. 포항공대는 포철 중심의 프로젝트에서 범위를 넓혀 외부기업과의 합동연구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말에는 현대자동차와 협력,원격조정이 가능한 무인자동차를 개발했다. 자동차 내구성 시험에 이용되는 무인차 제작기술은 일본메이커들이 그동안 쉬쉬해 오던 것.
5년간 1천4백억원이 투입되는 국내 최초의 방사광가속기 제작사업은 정부·기업·대학이 힘을 합친 초대형 산·학·관 협동사례로 꼽히고 있다. 내년말 완공되면 생명·화학·전자·재료공학 연구에 큰 파급효과를 몰고 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핵심기술을 국산화했다는데 의의가 크다.<노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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