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외의 UR 대책 서있나(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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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막바지에 이른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은 쌀개방 말고도 힘겹게 대처해야 할 수많은 과제들을 우리에게 안겨주고 있다. 쌀개방의 충격이 워낙 큰 것이긴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UR협상 내용의 전모를 두루 살피는 여유와 총체적인 대응전략을 생각하는 침착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쌀에 이어 제2,제3의 개방파동에 계속 허우적거릴 것인가의 여부는 지금부터 우리가 얼마나 치밀하게 개방준비를 추진해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UR협상은 서비스교역에 관한 최초의 다자간 규범 제정이란 성격을 지닌 만큼 이 분야에서 준비해야 할 일들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다행히 이번 협상에서 최종 타결될 서비스시장 개방내용은 개방폭이 한정돼 있고 점진적인 개방추진을 예고하고 있기는 하지만 국내 서비스산업의 전반적인 낙후성을 고려하면 제한된 개방에도 심한 몸살을 앓게 될 가능성이 크다.
금융·증권·보험·건설·교통·통신·관광·영화·광고 등 거의 전 부문에 걸쳐 협소한 시장과 심한 규제,그리고 절대적 열세에 있는 업체 규모·기술·생산성으로 구조적 취약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총생산과 전체고용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서비스산업이 국제경쟁력을 제대로 갖추지도 못한 상태에서 시장개방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경우 우리 경제는 쌀개방에 버금가는 개방충격에 휘말릴지도 모른다.
그 충격은 비단 해당부문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증시개방 하나만을 놓고 보더라도 지금까지 진척된 개방조치의 테두리 안에서 유입되는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이 금년에는 50억달러를 넘어서고 내년에는 1백억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 경제운용 전반에 미칠 영향을 판단하고 그 대책을 세우는 것만도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UR협상에서 다뤄진 보조금·상계관세·긴급수입제한 등의 새로운 무역규범들에 대처하는데도 적지 않은 혼란이 예상된다. 금융·조세상의 혜택을 중심으로 짜여진 산업지원제도를 전면적으로 다시 손질하는 작업도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수십년간 그같은 지원제도에 의존해온 산업활동의 체질을 새로운 국제규범에 맞게 바꾸어 나가려면 엄청난 진통이 따를 것이다.
UR 협상이 몰고올 변화의 숲을 보면 쌀을 포함한 몇몇의 나무에 온통 신경을 빼앗기고 있을 계제가 아니다. 시간을 두고 대처할 일은 젖혀두고라도 당장 내년부터 착수해야 할 대응과제들은 지금부터 서둘러 챙겨야 한다.
UR 타결이후의 새로운 과제중 내년도 경제운용계획에 반영해야 할 부분을 가려내고 그 세부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작업이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은 아직까지 들려오지 않고 있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변화의 파고가 아니라 변화를 극복하려는 실천의지와 대응전열이 흐트러져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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