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관까지 살인누명 씌운 수사(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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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경찰관의 억울한 살인혐의와 옥살이는 충격적인 일이다. 경찰관마저 동료들에 의해 가혹행위를 당하고 살인혐의까지 뒤집어써야 하는게 현실이라면 일반인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현직 경찰관의 억울한 살인혐의와 옥살이도 충격적인 일이지만 더 놀랄 일은 경찰과 검찰이 진범을 잡고도 이를 쉬쉬하며 덮어두려 했다는 사실이다.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달 24일 새벽에 진범을 잡아 그 증거까지 확보하고도 검찰과 협의해 강도살인 부분을 뺀채 강도상해혐의로만 송치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관련 경찰관과 검사는 엄중히 문책되어야 한다. 살인누명을 씌운건 실수였다고 변명할 여지도 있으나 진범 은폐는 변명할 길 없는 고의적 범법행위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에 대한 문책을 모면하려고 어제까지의 동료가 12년간의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것도 그대로 봐넘기려 했던 이런 경찰과 검찰에게 어떻게 국가형벌권을 맡길 수 있을 것인가.
사법부도 책임을 모면하기는 어렵다. 피고인 재판과정에서 무죄를 거듭해 주장했고,증거라고는 수사기관에서의 자백과 정황증거가 고작이었는데도 1심과 2심은 다같이 검찰측의 판단을 받아들여 12년형을 선고했다. 법원의 심리가 지극히 형식논리적이고 타성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증거다.
이 사건은 중요한 몇가지 점을 일깨워주고 있다. 첫째는 최근 대법원이 방침을 밝힌바 있는 불구속 재판의 원칙이 빠른 시일안에 실제 사건에 적용돼야 하겠다는 점이다. 허위자백은 피의자가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가혹행위와 회유를 받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외부와의 접촉이 자유로운 불구속상태였다면 살인이라는 중죄를 뒤집어쓸 바보는 없을 것이다.
둘째는 변호인 접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법개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점이다. 혐의의 골격은 거의 대부분 초기 경찰수사단계에서 완성되기 때문에 헌법조항의 정신 그대로 체포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얻을 수있도록 형사소송법 등 하위법의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었다면 역시 허위자백은 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셋째는 엄격한 증거주의를 채택해 자백의 증거능력을 대폭 제한해야 하겠다는 점이다. 현재 사법부는 검찰에서의 자백은 그 임의성과 증거능력을 인정하고 있는 경향이나 이번 사건이 명백히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검찰에서 한 자백의 임의성 역시 경찰에서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특히 철야수사와 같은 가혹행위를 통해 받아낸 자백같은건 무조건 배척해야 마땅할 것이다.
「1백명의 죄인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사람의 억울한 죄인을 만들지 말라」는 법언을 경찰도,검찰도,사법부도 다시한번 새롭게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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