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개편론/꼬리무는 풍문… 시기에 촉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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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연내냐 내년이냐” 전망도 가지각색/“자주 안바꾼다” YS 소신 깰지 관심
당정개편 불가피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매년 연말이 되면 연례행사처럼 나오던 개각설과는 그 목소리의 진폭이 다르다.
내각과 여당 지도부의 국가관리능력 부재에 대한 위기의식이 여권 내부에 고조돼 있는데다 쌀시장 개방·국회운영 미숙 등 책임론 또한 강경하게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삼대통령은 『장관이 자주 바뀌어서는 일을 할 수 없다』는 고집과 소신을 계속 유지하면서 10일에도 개각 불고려를 말하고 있으나 이런 대세론을 언제까지 외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청와대에서조차 『대통령의 소신이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각이 스스로 결심을 해주어야 대통령의 어깨가 가벼워지지 않겠느냐』고 등을 미는 측면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 시기에 대한 전망도 다양하다. 우루과이라운드(UR) 타결직후인 12월 중반에서 연말사이를 점치는가 하면 김 대통령의 주요정치 목표인 정치개혁입법이 마무리되는 내년초 이후로 넘어갈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쌀 태풍으로 곤욕을 치른 청와대는 당정개편을 하나의 당위로 여기고 있다. 김 대통령의 고집에 비춰 무슨 말을 해도 내년 2월이후에나 있을 것이라던 청와대 관계자들까지도 연말,늦어도 연초의 당정개편은 불가피한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자기 모순 우려도
개편시기와 관련,이들 고위관계자들간에도 전망이 엇갈리고 있기는 하지만 20일을 전후한 연말 개각론이 우세한 형편이다. 12일 제네바 최종협상을 마친 허신행 농림수산부장관을 단장으로 한 협상대표단이 15일 귀국한 이후 김 대통령의 결단이 있지 않겠느냐는 전망이다.
그때의 쌀정국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장담할 수 없으나 내각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단안이 내려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허 장관만 하더라도 본인이 배겨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최소한의 개각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인데 국민적 불만과 분노가 황인성 내각 전체를 겨냥하는 만큼 김 대통령이 이 부담스런 내각을 계속 끌고 갈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다.
이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총리·부총리를 비롯한 경제팀과 비경제팀의 장관 몇몇은 경질되는게 바람직하지 않느냐는 분석이다.
개각과 함께 관심을 모으고 있는 민자당 개편에 대해서도 불가피 의견이 압도적인데 12·2 예산안 날치기 실패가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이런 것들이 연말 대폭 개편을 당연시하게 하는 것들이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쌀개방이라는게 특정개인의 책임을 물을 성질의 것이 아닌데다 UR 협상타결이 국가전체로는 이익이 된다고 해놓고 문제를 삼는 것은 자기 모순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내각 능력에 의문
○…민자당 의원들은 공식석상에서 개각에 대해 일절 함구하고 있다. 인사권자가 대통령인데다 당직개편과도 맞물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석에서 만나면 야당 의원들 못지 않게 강한 어조로 그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
한 중진의원은 『김 대통령이 쌀개방문제에 대해 담화를 발표했으나 그것만으로 격앙돼 있는 민심을 추스르기에는 부족하다. 대국민 사과에 따른 실천방안으로 1차적으로 고려될 수 있는 조치가 바로 개각』이라고 말했다. 민정계 출신 한 의원은 『현 내각은 쌀개방 문제뿐 아니라 그동안 업무수행 과정에서도 능력·전략·팀윅에 문제점을 드러냈다』며 『차제에 전면적인 개각을 단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몇몇 장관들의 이름을 거명해 문제점들을 열거한뒤 「오합지졸」이라는 말로 황인성 내각의 현안 대처능력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또다른 의원은 『현 시점에서의 개각설은 연말연시만 되면 으레 예측되던 그런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며 『쌀시장 개방을 막겠다고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약속했지만 결국 이를 지키지 못했다. 따라서 단순히 분위기 쇄신이나 민심수습 차원이 아니라 대통령의 어깨를 가볍게 하는 개각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불편한 심기 반증
○…민주당은 느긋한 표정으로 민자당의 당정개편설을 지켜보고 있다.
지난 7일 국회 본회의에서 각종 현안들이 타결돼 판정승을 거둔이후 민주당 의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웃으면서 『민자당의 당정개편이 곧 있겠군』이라는 말을 주고 받았다.
최근에는 누구누구는 안되겠다는 식의 전망까지도 심심치않게 나온다. 민주당이 민자당의 당정개편을 점치는 이유는 몇가지가 있으나 그중에서는 당정의 무기력을 드는 사람이 많다.
또 쌀문제와 관련해서는 김 대통령으로 하여금 대국민사과까지 하게한 정부·여당의 무소신을 지적하는 의원들도 있다.
한 의원은 『만일 한 사람이도 총대를 대신 메고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김 대통령이 국민들 앞에 나서는 일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김 대통령이 담화발표이후 당정의 고위간부들에게 얼굴 한번 돌리지 않고 퇴장한 것도 여기서 오는 불편한 심기탓이며 『당정개편의 징조』라고 이 의원은 지적했다.<김현일·신성호·박영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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