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혀진 「김정일체제」 반증/북한 김영주 복권조치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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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권력승계에 방해세력 못된다” 판단내린듯/가족포용차원… 남북 특사활용 포석 분석도
북한이 8일 김일성의 친동생인 김영주를 노동당 정치국 위원에 기용,북한의 권력구조 변화와 관련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때 김일성의 후계자로 지목됐던 김영주는 75년 4월 최고인민회의 제5기 5차회의 참석이후 권력일선에서 물러나 잠적,올 7월26일 전승(휴전) 40주년 행사를 맞아 18년만에 모습을 드러냈었다.
그러나 김이 북한 권력의 핵인 노동당 정치국 위원에 복권한데 대해 그가 북한 권부내에서 하나의 세력권을 형성한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김정일의 후계체제가 뿌리를 공고히 내린 만큼 그동안 김정일과 알력을 빚어온 것으로 알려진 김영주를 예우하는 차원에서 내린 조치라는 것이다.
북한이 이달초 김정일의 이복동생인 김평일 불가리아 주재 대사를 해임하고 본국으로 불러들인 것도 김영주의 복권과 맞물린 가족간의 「포용」 성격이 짙다는데 정부 관계자의 분석이다.
즉 김영주의 복권 이면에는 김정일의 후계체제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했음직하다.
그의 복권이 김정일 우상화 작업이 정점에 달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뤄진 것이 이들 뒷받침한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일과 갈등관계에 있었던 계모 김성애가 최근 열린 여맹 전원회의에 나타나 김정일을 치켜세운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분석이다.
정부 관계자는 『김영주의 복권과 김평일의 귀국 등은 그동안 김정일의 후계작업을 위한 곁가지 정리작업에서 포용하는 단계로 접어든 것을 의미한다』면서 『이는 후계체제가 공고화됐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말했다.
김의 복권은 또한 그를 남북특사로 활용하겠다는 포석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영주는 61년 노동당 4차 전당대회에서 당조직부장에 올라 당 조직과 인사를 장악하면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70년 11월부터 당정치국위원과 당비서를 맡으면서 그는 김일성의 후계자 물망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73년 김정일의 권력 전면 등장과 함께 정무원 부총리로 강등되면서 내리막길을 걸었고,75년이후 공식석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김영주는 지난 72년 남북조절위원회 북측위원장 자격으로 평양에서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을 비밀리에 만나 스폿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김영주의 남한 답방은 이뤄지지 않았고,대신 박성철부주석이 서울을 방문했었다.
김의 복권과 함께 이번 북한인사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홍석형의 파격적 승진 및 국가계획위원장 기용이다.
김책제철소 당책임비서인 홍은 노동당 중앙위 후보위원에서 일약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입성한 것이다.
북한이 홍을 국가계획위원장에 임명한 것은 일단 이론보다는 풍부한 현장경험을 경제계획에 반영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홍의 국가계획위원장 기용은 또한 그동안 국가경제계획을 진두 지휘했던 김달현의 조동(자리이동)이 문책인사임을 짐작케 한다.
이는 북한이 8일 제3차 7개년 경제계획이 주요지표를 달성하지 못한채 실패로 끝났다고 발표한데서 잘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동경에서 수신된 중앙방송은 『북한경제가 암울한 시련을 겪고 있으며 현재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이와관련,『일정기간의 조정기간을 갖고 농업·경공업·무역부문에 최우선을 두어 활성화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아무튼 이번 인사에서 국가계획위원장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개방기조는 계속될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다.<오영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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