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한국쌀(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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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민족의 삶에 있어 쌀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없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 골고루 연관되어 있을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힘」의 원천으로서의 역할까지 감당해왔다. 조상의 영을 섬기는 가제에서 신주단지에 봉납되는 나락으로서,혹은 풍년의 기원이나 자손의 번영과 안녕을 비는 매체로서 쌀이 이용됐다는 점만으로도 정신문화와의 밀접한 연관성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특히 정치를 펴나가는데 있어 쌀은 항상 옳고 그름을 가리는 표준이었다. 쌀농사가 잘되느냐 못되느냐는 문제는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것임에도 풍년으로 온국민이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되면 정치를 올바르게 펴나간 덕으로 보았고,흉작으로 백성이 굶주리게 되면 실정으로 하늘이 노한 탓으로 보았다. 가뭄이 들때 왕이 직접 기우제를 지내는 풍습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그래서 쌀의 생산과 유통과정에서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들이 잇따랐다. 기원전 1세기부터 약 3백년간 존속했던 부여에서는 쌀농사가 풍요롭지 못하면 그 책임을 왕에게 물어 신하들이 왕을 바꾸거나 죽이는 풍습이 있었다는 기록도 나아있다. 조선조 순조때는 쌀값이 폭등해 국민들이 식생활에 곤란을 겪게 되자 쌀을 매점매석한 상인 7명을 사형에 처하기도 했다.
어떤 정부도 쌀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운 것은 당연했다. 왕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정부의 모든 관리들이 저마다 쌀에 관련된 역할을 분담해 맡은바 책임을 다하는 것이 능력평가의 기준이 되기도 했다.
현대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쌀문제는 예나 이제나 다름없이 직접 생산하는 농민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전체국민의 삶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대통령이나 관련부처는 물론 모든 관리들이 역할을 분담하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쌀시장 개방이 발표되면서 역할분담이 제대로 되어있는지,책임의 한계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따위의 문제가 당연히 제기된다. 역할분담만 제대로 이루어졌던들 이렇게 쉽게 무너졌겠느냐는 소리도 나올법하다.
이제는 개방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얼마나 우리쪽에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낼 수 있느냐는 문제만 남았지만,「정치가 쌀을 버렸다」 「우리 쌀이 불쌍하다」는 국민들의 한숨섞인 탄식을 어떻게 무마할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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