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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있는고향>계피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달아 달아 밝은 달아/이태백이 놀던 달아/저기저기 저 달 속에/계수나무 박혔으니/옥도끼로 찍어내어/초가삼간 지어놓고/양친부모 모셔다가/천년만년 살고 지고.
국민학교 다닐 때 배운 노래를 필자는 잘 기억하고 있다.
당시에는 노래가 내포하는 깊은 뜻 내지는 정서는 모른채 마을앞 동산 위로 떠오르는 보름달만 보면 무작정 동무들과 흥겹게 외쳐 부르던 동요였다.
요즘 아이들처럼 랩이니 록 발라드니 하는 대중가요를 부르고 야릇한 율동을 흉내내는 유행이랄까 멋은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런 노래를 적당히 나이든 오늘 무심결에 흥얼대보니 그렇게 정겹고 멋스러울 수가 없다.
우리나라 달에는 계수나무가 들어 있다.그리고 그 곁에는 의당토끼가 떡방아를 찧고 있음이다.
20세기 첨단 과학의 시대,우리별2호까지 광활한 우주를 향해쏘아 올려진 상황에 무슨 시대착오적인 얘기냐고 한다면 특별히 대꾸할 바가 없겠지만 우리 한국인의 심성 속에는,한국인이 그리는 달의 이미지 속에는 반드시 토끼와 계수나무가 나란히 존재하는 것이다.그 둘이 조화를 이루지 않는 달은 이미 달이 아니다.이것이 우리의 미의식이다.
그리고 가을철에서 겨울철에 걸쳐 실제의 계수나무 껍질을 벗겨말려 잘게 썰거나 부수어 수정과를 만들때 독특한 맛을 내는 향신료로 개발하는 지혜,예리한 미각을 한국인은 지녔다.생강차를 낼 때도 계피를 넣는다.어떤 이에게 겨울철에 제 일 마시고싶은차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생강차라 하고,또 다른 사람에게 물으니계피차라 한다.사실 두차는 엇비슷한 데가 있다.생강차를 끓일때계피를 넣고,계피차를 끓일 때는 역으로 생강을 첨가하기 때문이다.수정과.생강차의 경우와는 달 리 계피차는 계피가 향신료가 아닌 주원료로 쓰인다.그러나 너무 많이 넣으면 매콤하면서 톡 쏘는 맛 대신 텁텁하니 떫은 맛이 난다.
본래 계피의 기미는 따뜻하고 달면서 맵다.소화를 돕고,비위를따듯하게 해주는 효능이 있어 소화불량에 걸렸거나 배가 찬 사람들이 즐겨 마셔왔다.추위를 쫓고,진통.행혈(行血)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어 추위로 움츠러든 어깨를 펴게 하고, 역시 전적으로추위 때문에 생기는 몸결림이나 마비증상을 해결하는데 좋다.계피차가 겨울철에 남다른 사랑을 받는 기호차가 되고 있는 이유다.
학교에서 공부하다 밤늦게 돌아온 자녀들에게,힘든 사회생활로 만성장염.구토.발열.두통등의 증상으로 늘 시달림을 받는 이땅의가여운 가장들에게 용기내어 열심히 잘 살라는 위로차로 계피차를장만해 두고 매일 밤 한잔씩 대접함은 어떨까.
계피를 이용해 맛있는 수정과를 만들고자 한다면 계피.생강에 아예 흑설탕을 함께 넣고 끓여 여기에 곶감을 재도록 하는 것이좋다.큼지막한 찻잔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계피차를 손에 들고홀짝홀짝 마시는 즐거움.비제의 오페라『진주조개잡 이』중에 나오는 아리아 『Mi Par d'udir Ancora』가 일층 비장한 아름다움으로 가슴을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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