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강한정부에 집착-김대통령의 예산안 강공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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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金泳三대통령은 예산안처리를 앞두고『법을 만드는 국회가 먼저 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말을 여러차례 강조한 바있다.이번 날치기 파동은 金대통령의 이러한「법대로」「원칙대로」라는 의지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새정부 출범이후 명분을 소중히 여기며 여론을 주도했던 金대통령은 이번 사태로 그의 이미지에 많은 손상을 입었다.金대통령이이러한 부작용을 알면서도 왜 강행처리를 고집했을까.
현실정치인으로서 金대통령은 정치가 힘의 대결이라고 철저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집권 첫해부터 밀리면 계속 밀린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盧泰愚前대통령의「물 정부」에 대한 일반의 비판을 의식,대통령후보때부터「강한 정부」「강한 대통령」을 공언해온 金대통령은 어차피 국회가 좋은 모양으로 끝나기 틀렸다고 판단되자 강행처리를지시한 것이다.
오랜 야당생활로 인한 직감으로 야당이 고분고분 따라오지 않을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협상을 지켜 본 결과 타협이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자「한다면 하는」 강력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심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음직도 하다.지난달 29일 자신 의 국회연설당시 민주당의원의 불참사태에 분격한 金대통령은 30일의 국무위원간담회에서『세계가 급변하고 있는데 우리의 의식.관행만 그대로다』며 야당의 행태를 비판하고는 예산안의 법정시일내 통과를 강조했다.그러면서『사심없이 혼신의 힘을 다하면 국민과 역사가 평가해줄 것이므로 모든 현안을 원칙대로 당당히 처리해 나가라』고 촉구했었다.
그러나 단순히 강한 대통령임을 과시하기 위해 정치적 부담이 큰 강행처리를 감행한 것만은 아니다.
이같은 무리수를 선택할 때는 불가피한 나름의 사정과 계산이 작용한게 틀림없다.
우선 며칠후에 있게 될「쌀시장 개방 선언」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한듯하다.
야당.농민등의 거센 반발에다『대통령직을 걸고 막겠다』는 대선당시의 공약으로 집권이래 최대의 정치적 시련을 겪고 있는 金대통령으로서는 예산안으로 시일을 끌다가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닥칠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미뤄둔■예산 안이 쌀문제와겹쳐 상승작용을 일으킬 경우의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런 계산 때문에 與圈은 며칠간 협상을 더 해보자는 야당의 제안을 거절한 것이다.야당이 협상을 빙자해 시간을 끌 경우 최악의 상황이 닥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한 고위관계자는『누구보다 야당의 생리를 잘 아는 金대통령이 야당의 뻔한 속셈을 예상하지 못하겠느냐』며 당장의 비난을 무릅쓸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다가오는 현안을 순차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최선책이라는 것이다.야당의 장외투쟁이 부담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장외투쟁은그것대로 대처하면 그뿐 아니냐는 것이다.야당의 의중을 잘알고 있다는 자신감도 스며있다.朴寬用비서실장.朱燉植정 무수석비서관등은 2일밤 국회의 소동을 여유있게 지켜보았다.청와대의 분위기를암시하는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金대통령이 이번 강행처리 과정에서나타난 국회의 추잡한 몰골을 舊態로 규정,정치권 개혁의 촉매로삼고자 한다는 분석이다.
***黨政개편 가능성 청와대는 여당의 날치기나 야당의 폭력은정치발전을 위해 모두 타기해야 할 대상이라고 단정짓고 있다.여당의 변칙처리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나 폭력으로 대응하는 야당의 책임이 더 크다는 것이다.
되치기의 명수인 金대통령이 이번에도 야당의 舊態를 부각시켜 정치개혁의 추진력으로 삼을수도 있다.
이번 예산안파동과 쌀시장 개방과 관련한 소란으로 정국이 불안해질 경우 수습책의 일환으로 내년초로 예상돼온 黨政개편이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히 이 경우 국민감정에 비춰 고단위의 희생양이 요구되므로 그 폭은 상당할 것이 확실시된다.
〈金玄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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