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주도권 다시 거머쥐자”/호기 잡은 민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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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거리정치」 치닫는 쌀정국 어디로…/서명돌입… 장외투쟁 분위기 조성/규탄대회등 잇따라 열어 여권 압박 전략
이기택 민주당 대표가 쌀시장 개방 저지를 위한 장외투쟁 방침을 밝힘에 따라 쌀정국의 여야 대립이 더욱 경색화하고 있다.
이 대표는 30일 오전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쌀시장 개방저지에 모든 당력을 집중해 여야 강경투쟁을 하겠다고 천명했다.
김영삼정부의 명분과 이에 대한 여론의 지지에 눌려 새정부 출범이후 계속 기를 펴지 못했던 민주당으로서는 정국을 반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이날 이 대표의 기자회견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장외투쟁과 예산안을 쌀개방과 연계시키겠다는 점이다.
민주당이 쌀수입 개방을 최우선적인 현안으로 부각시킴으로써 추곡가·개혁입법 등 기존의 예산안 연계고리를 보다 단단하게 매어놓았다.
이는 이틀밖에 남지 않은 예산안의 법정시한내 순탄한 처리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특히 이 대표가 쌀개방 저지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장외투쟁을 천명한 점이다. 민주당은 내달 15일 우루과이라운드(UR) 타결전까지 쌀개방 저지를 관철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하겠다는 투쟁의지를 밝히고 그 수단의 하나로 지구당별 장외투쟁을 전개할 뜻을 밝혔다.
이를 위해 이 대표는 민주당·농민단체·재야·사회단체를 포괄하는 「쌀수입 개방 결사반대 범국민 대책위원회」(가칭)의 구성을 제의했으며 일단 1천만명 서명작업으로 쌀개방 반대의 여론확산에 주력하기로 했다.
민주당은 우선 30일 국회에서 소속의원과 무소속·국민당 의원들의 서명에 들어감으로써 사실상 장외투쟁의 분위기 조성에 나섰다.
전국 시·도지부별로 구성될 「범국민 대책위원회」의 현판식이 장외투쟁의 큰 줄기가 될 것이라는 복안도 민주당은 갖고 있다.
이러한 강경투쟁을 뒷받침하기 위해 민주당 소속의원들은 쌀시장 개방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전원 국회에서 농성하면서 매일 아침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갖기로 했다. 농성실행일자는 추후 결정키로 했다.
물론 이 대표는 이러한 투쟁방식이 여야의 정쟁차원이 아니라 국익 우선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이 전례없이 강한 톤으로 대정부 성토에 나선 것은 「쌀정국」이 통상적인 강도로는 풀리지 않는다는 인식과 이 기회를 활용,정국의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복합적인 계산에 근거하고 있다.
국제협상 테이블은 내달 15일의 UR 타결시한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상황이나 정부와 여당은 쌀개방에 대해 이렇다할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김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걸고 쌀개방을 막겠다』고 한 대선때의 공약은 정부·여당의 운신폭을 절대적으로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당과 이 대표로서는 이번이 야당으로서의 면목을 보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음직하다. 정부와 청와대의 뒷북만 쳤던 민주당은 쌀정국으로 「후수」를 만회할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또 예산안의 민자당 단독처리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도 민주당을 자극한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민주당은 예산안과 연계해놓은 안기부법 개정안과 추곡수매 문제에서 민자당으로부터 상당한 양보를 얻어냈다. 아마 쌀개방 문제가 터지지 않았다면 여야는 어느 선에서 타협했을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쌀정국이 민주당에 힘을 몰아주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으로서는 이번 기회에 안기부법 등 개혁입법의 방향까지도 민주당의 뜻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상황을 이렇게 낙관만하고 있지는 않다.
30년 야당 정치인으로 자라온 김 대통령이 야당의 전략에 너무나 밝다는 점에서 이번 국면이 민주당 의도대로 흘러가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또 극한의 대립은 대통령으로 하여금 다른 결심을 하게 만들 수도 있다.
김 대통령은 개혁정치를 내걸며 예산안의 법정기한내 통과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쌀개방 문제는 무조건 반대만 한다고 해결될 수 없는 국제적 문제라는 점에서 대안없는 야당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박영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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