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체면 살리며 현안타결 겨냥/김 대통령 영수회담전 국회연설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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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국회위상 높이기 사전정지 뜻/협상 앞서 대국민 호소 새 시도
정국이 다시 활발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예산안 통과 법정시한이 닷새밖에 안남았다. 그런데도 계수조정소위 구성은 물론 부별 심의도 시작하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김영삼대통령의 귀국으로 실마리가 풀려가고 있다.
김 대통령은 29일 국회에 출석하여 본회의에서 귀국보고를 겸한 정치권의 협조를 촉구할 예정이며 그 자리에서 여·여 영수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
청와대 실무자들이 당초 계획한 26일 영수회동은 무산됐다. 청와대 정무비서실은 당초 26일 청와대에서 정계 대표와 3부요인 초청해 오찬을 한뒤 여야 영수가 잠깐 별도 회담을 갖는 방식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 계획을 야당측에 전달하기도전에 언론을 통해 반응을 떠보는 등의 미숙한 처리가 이기택 민주당대표측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더군다나 여러 사람을 부른 오찬회동 뒤에 차를 마시는 시간을 별도로 갖는다는 것은 야당 영수에 대한 예우가 아니란 것이다.
민주당의 이 대표가 이러한 반응으로 나오자 청와대는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정국을 풀기 위해 여야 영수회담을 가졌던 옛틀을 깨고 대통령이 직접 국회에 나가 국민의 대표에게 귀국보고를 겸한 정치권의 협조를 요청키로 한 것이다. 사실 대통령이 귀국시까지 여야 영수회담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 전혀 없었다. 여야 3역회담을 해도 말싸움만하고 헤어질 정도로 여야 사이의 의견대립은 날카로웠다. 이런 상황에서 무턱대고 영수회담을 갖는다는 것은 서로에게 부담이 된다.
민자당의 한 당직자는 『아직 시간이 있는데 대통령에게 모든 부담을 미룰 수는 없는 것 아니냐. 미리 정지작업을 한뒤 최종 마무리를 대통령 몫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식 민주당 총무도 『여야 사이에 아직 아무런 의견접근도 없는데 어떻게 영수회담을 하느냐』고 말해 이 부분에는 서로 공감을 표시했다.
청와대측은 당초 계획과 달리 야측에서 호응이 이루어지지 않자 이기택대표에게 26일 오찬에 참석해 달라는 초청조차 25일 저녁에야 전달했다. 이 바람에 김 대표측은 오찬에도 불참하려 했다.
현재 여야 사이에는 다음달 2일까지 법정시한인 예산안 통과와 안기부법의 수사권 폐지문제,추곡수매안 등이 현안으로 걸려 있다. 여기에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김 대통령의 외교활동과 관련한 쌀 등 시장개방 문제가 새로운 문제로 등장했다.
그러나 국내에서 야당으로부터 최소한 묵인이라도 받아내기 위해서는 이제까지 여야 사이에 현안으로 걸려있던 문제들을 연계해 야당의 체면을 세워줄 수 밖에 없다. 청와대는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여 대통령이 우선 국회에 나가 귀국보고를 해 국회의 위상을 높여주고 뒤이어 영수회담을 하기로 한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복선이 깔린듯하다. 김 대통령이 이 민주 대표와 마주 앉아 정치적 협상을 벌인다는 인식을 받지 않고 떳떳이 국민에게 호소하겠다는 속셈도 엿보인다.
사실 그동안 여야간의 막후 접촉에서 안기부법 등 현안들이 상당한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자당측은 안기부의 수사권을 간첩죄로 제한한다는 내부방침을 갖고 있다고 황명수총장도 밝혔었다. 더구나 조만후 안기부장특보가 정치특위에서 예산특례법 폐지와 관련해 실질적 심사권 보장 등 긍정적인 답변을 해 민주당측은 이 두가지가 한꺼번에 타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대표도 쌀 등 각종 시장개방의 가속화 문제를 정리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이 대표는 26일 『쌀시장 개방을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정부는 하루속히 수입개방을 전제로 철저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해 국제사회의 현실성을 인정하는 듯한 입장을 보였다. 민주당이 대통령이 이러한 대응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김진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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