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내정” 김 대통령앞에 놓인 현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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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발등의 불”로 다가온 개방화/쌀문제는 더이상 늦추기 곤란/예산안 법정시한 통과도 숙제
김영삼대통령은 취임이후 첫번째 가진 해외방문 정상외교에서 한국이 국제화의 문을 더욱 넓게 열어야 한다는 생각을 새삼 깨달은 것 같다.
김 대통령은 24일 수행기자들에게 『조그마한데 집착하지 말고 국제화·세계화·미래화 방향으로 나아가야겠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방미중 「신선한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이런저런 느낌이 어우러져 방미를 끝내는 김 대통령의 소감엔 뿌듯함이 많이 차있는 것 같다.
그러나 김 대통령이 9일만에 돌아온 국내에는 몇몇 내정현안이 날카로운 가시를 품은채 해결을 기다리고 있다. 특히 이번 정상회담 결과 더 강한 강도로 떠안게된 「개방문제」는 김영삼정부의 최대 시련으로 기능할 공산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선 쌀시장 개방문제가 시한폭탄처럼 째깍째깍 거리고 있다. 국회엔 추곡수매·정치개혁입법에다 안기부법 개정이 얽히고 설켜있다. 일이 잘못되면 과거정부처럼 법정시한(12월2일)에 맞춰 YS정부도 예산안 강행통과를 감행하든가,야당측의 전략에 이끌려 순탄치 않은 의정운영을 지켜보아야 한다. 이동복 안기부장특보의 「훈령조작 의혹사건」은 정부의 대북기관 및 정책에 구명을 드러내고 깊은 흠을 파놓을 가능성도 있다.
김 대통령은 당장 26일부터 내각·청와대·국회의 참모진과 함께 골치아픈 내정과 씨름해야 한다. 청와대와 민자당은 여야 영수회담 등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당정개편설도 다시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12월 정국의 향방이 궁금해지는 까닭이다.
○…24일 일부 신문에 『황인성 국무총리가 쌀시장 개방대비를 농림수산부에 지시했다』는 기사가 나 총리실이 발칵 뒤집힌 적이 있다. 황 총리 참모진은 『황 총리가 오히려 미국에 있는 한승주 외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쌀시장 사수」를 당부했는데 무슨 소리냐』며 펄쩍 뛰었다.
이 소동은 쌀개방 문제에 대한 정부의 고감도 고민을 잘 보여주었다. 요즘 정부내에서는 솔직히 「사수」 목소리가 점차 작아지고 있다. 대신 『피할 수 없는데…』 『농민을 어떻게 설득시키나』 『누가 총대를 메냐』 같은 소리들이 여기 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정부는 내년 4월께 「3% 이상 개방」 정도로 이 문제를 매듭지으려는 계획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청와대·민자당·내각에서는 『UR 타결시한(12월15일)까지 최후의 노력을 하되 안될 경우 농민을 설득하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잖이 등장하고 있다.
총리실의 고위관계자는 25일 『황 총리가 면전에 나서 이 일을 맡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말을 의미심장하게(?) 했다. 거의 같은시각 청와대 고위관계자도 『정부가 더이상 이 문제를 쉬쉬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와 민자당은 최근 벌어지고 있는 야당의 동계 대공세에 긴장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야당이 예결위에서 안기부 예산을 물고 늘어질 때만 해도 『그러려니…』하는 분위기였는데 이동복특보 사건이 눈덩이처럼 커지자 사안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여권은 이 특보 사건을 야당의 삼각고리 전략으로 보고 있다. 즉 안기부법·안기부 예산문제와 이것을 한데 엮어 여권을 밀어붙이는 구상이라는 것이다. 야당은 현재 여권이 안기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 놓지 않으면 예산안은 물론 정치개혁입법까지 거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야당은 여기에다 추곡가 인상·수매량 확대까지 얹어놓고 있다.
여권은 예산안 통과를 강행하여 국회에서 몸싸움을 하는 추한 모습은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그래서 최후의 순간까지 예산안 통과를 위한 야당의 협조를 끌어내기 위해 대화하고 협상한다는 방침이다. 청와대와 민자당은 26일이나 아니면 예산안 통과 법정시한인 12월2일전 적당한 시기에 추진하고 있는 여야 영수회담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야당이 비밀언덕을 마련하기 위해 안기부법 개정이나 추곡수매 확대 등에서 신축적인 양보안도 내부적으로는 마련해놓고 있다. 예를들어 수사권 축소명문화·안기부 예산심의 보장 등이다. 이 특보 사건은 「제3자」인 감사원이 조사를 시작했으니 그 결과에 따라 모든 일을 처리하겠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12월18일 국회가 끝나게 되면 여권은 당정개편설로 술렁이게 될 것 같다. 지금은 ▲연말 ▲취임 1주년(내년 2월25일) ▲내년 5월 민자당 전당대회라는 세가지 개편시기설이 나돌고 있다.<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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