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필>타계한 설야 시인 김광균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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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1914년 開城에서 태어난 金光均씨는 開城상업학교를 졸업하고고무공장인 경성공업사에 취직했다.문학과는 동떨어진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金씨는 詩作에 몰두,35년 金起林에 의해 시「오후의 構圖」가 추천되면서 본격적으로 문단활동을 시작했 다.
36년 경성공업사 군산지점에서 근무하다 서울본사로 올라온 金씨는 그 이듬해부터「子午線」동인으로 활동하며 徐廷柱.李庸岳.吳章煥등과 함께 일제말 한국시단을 이끌었다.
「어느 먼-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첨하 끝에 초롱불 여위어가며/서글픈 옛자취인양 흰눈이 내려/하이얀 입김질로 가슴이 메여/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내 홀로 밤깊어 뜰에 내리면/먼 곳에 女人의 옷벗는 소리…」 눈내리는 소리,아니면 먼 곳 女人의 옷벗는 소리가 어찌 귀에 들리겠는가.그러나 金씨는 시「雪夜」에서 하늘거리며 내리는 눈과 여인의 옷벗는 모습을 소리에 연결시키며 여인의 수줍은 순결함과 함께 그리움을 환기시키고 있다.운율에만 집착 하는 전통시에 반해 시각적 이미지를 중시,의미의 확산을 꾀하려는 모더니즘시의 한 전형을 보이고 있는 시다.
金씨는 또 당시의 시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던 기차.전신주.고층빌딩등 도시적.문명적 언어들을 詩語로 즐겨 사용,도시적 서정을 개발해 나갔다.그러한 새로운 감각에도 「서글픈」「고독한」등식민지하 특유의 애상적 분위기를 가미,金씨는 3 0년대 최고 인기시인으로서 자리를 누릴수 있었다.
이런 金씨를 가리켜 林和는『신세대의 기수』라고 불렀다.자유분방한 감각에 의한 이미지들의 결합과 지적으로 계산된 정확하고 세련된 시적 구조로 초창기 한국현대시의 지평을 넓히던 金씨는 51년 건설실업 사장이 되면서부터 시와 멀어지게됐 다.그러다 57년 세번째 시집『黃昏歌』를 고별시집으로 펴내며 시상이 떠올라도 감각이 잘 안따른다는 말을 남기고 시를 등졌다.84년부터다시 시작을 재개한 金씨는 89년『壬辰花』를 네번째 시집으로 펴냈다.이 시집을 펴내며 金씨는 『나 는 죽어 實業人이 아니라詩人으로 불리길 더 원한다』고 밝혔었다.
〈李京哲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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