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건 목소리 커지는 미 대북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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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의 안보불안감 이해… 논의도 가능” 주목/“「임시」냐 「특별」이냐” 핵사찰 성격 언급회피
북한 핵문제에 접근하는 미국입장이 보다 신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새로운 변화는 그간 국방부 등의 강경론에 밀려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국무부내 온건파가 차츰 제위상을 찾기 시작한데서 오는 것으로 보인다.
미 국가안보회의(NSC)가 16일 빌 클린턴 미 대통령에게 건의한 북한 핵문제 정책은 북한이 핵사찰을 수락할 경우 팀스피리트 한미 연례 합동군사훈련을 중단한다고 동시에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미국이 지금까지 북한과의 협상에서 북한이 핵을 먼저 포기해야 다음문제를 토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해온 것에 비추어 주목할만한 변화다. 나아가 이는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정상화와 핵문제 해결을 연계하자는 일괄타결 방식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추측을 낳고 있다.
미 관리들은 여전히 북한이 핵사찰을 수용해야 하며 특사교환에 의한 남북한 대화를 재개해야 미­북한 고위급회담 재개 등 북한과의 대화가 진전될 수 있다는 입장을 기회있을 때마다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입장을 표명하는 방식이 전과는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전체가 충족될 때 미국이 북한에 제시할 수 있는 조건도 차츰 구체화되고 있다는 것이 관측통들의 분석이다.
이같은 변화는 그간 대북한 고위협상에 미국측 대표를 맡아온 로버트 갈루치 미 정치군사담당 차관보를 통해 16일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는 카네기센터 주관 북한핵 세미나에 참석해 미국이 사태 타결을 위해 「최대한의 외교적 노력」을 기울일 것임을 거듭 밝혔다.
이날 발언중 『북한도 핵문제 타결을 바란다는 틀에서 미국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는 대목과 『북한이 갖는 안보측면의 불안감을 이해하며 여건이 형성되면 이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란 부분이 특히 주목된다.
이와관련,북한 핵에 정통한 미 의회 관계자는 『클린턴 행정부가 이제야 전열을 정비한 것 같다』면서 『문제해결에 대한 자신감을 얻은게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그는 미정부가 북한 핵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의 계속성이 깨졌다고 판단될 경우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북한 핵문제를 회부할 수 밖에 없다고 거듭 경고한 얼마전까지의 태도에 비해 최근에는 이런 언급이 부쩍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갈루치 차관보나 또 전날 기자들과 만난 워런 크리스토퍼 미 국무장관은 미국이 요구하는 핵사찰의 성격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길 꺼리는 모습이 완연했다.
마이크 매커리 국무부 대변인의 경우 지난주 정례 뉴스브리핑에서 『미정부가 사찰을 요구하면서 어디까지라고 구체적으로 선을 그은 기억이 없다』며 불분명한 태도를 보이기까지 했다.
미국의 이같은 유화책은 최근 북한의 강석주 외교부 부부장의 성명을 계기로 북한에 핵사찰 수용의 명분을 제공,미국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북한 핵문제를 유도해 나가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의 태도변화는 그간 일각에서 전해져온 북한 핵과 관련한 한국과 일본의 우려에 대한 응답의 성격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방향전환은 특히 북한을 강경 응징하는데 대해 한국내 온건세력이 보여온 불안감을 가라앉히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워싱턴=진창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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