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EU 도전' 경제역량 강화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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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5월 1일이 되면 유럽연합(EU)은 25개 회원국, 인구 4억6천만명으로 구성된 경제적 수퍼파워로 등장하게 된다. 확대 이후 EU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미국과 비슷한 9조5천억유로 규모로 전 세계 GDP의 약 4분의 1 수준에 이르고, 교역규모는 미국의 수준을 훨씬 넘어선 2조4천억유로를 기록하게 될 것이다. 25개 회원국 간 교역 자유화는 물론 제3국들에 대한 공동관세 설정, 제반 공동 경제정책의 시행, 단일통화 사용 등으로 EU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의 단일시장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선진화된 세계 최대의 단일시장으로서의 EU의 등장은 우선 우리에게 무역.투자 증진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 보다 선진화된 각종 교역투자 관련 제도가 신규 가입국에도 도입됨으로써 교역의 예측성.투명성 및 안정성이 제고되고 행정비용 등 제반 거래비용 절감이 예상된다. 더욱이 10개 신규 가입국으로의 수출에 대해 대체로 EU 가입 이전보다 낮은 관세율이 적용됨에 따라 이들 지역에 대한 우리의 수출이 늘어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아울러 중장기적으로 EU 확대가 성공적으로 추진될 경우 역내 경제성장 및 소득증대로 인한 추가 수요 창출까지 감안하면, EU에 대한 우리의 수출 증대 여지는 더욱 커진다고 할 수 있다.

물론 EU 확대는 역내 의존도 제고에 따른 무역전환효과(trade conversion effect)가 우려되고 기존에 EU가 제3국에 대해 취하고 있는 수입규제 조치가 신규 가입국에도 자동 확대.적용될 가능성이 있는 등 일부 부정적 효과도 있다. 엄격하기로 이름난 EU의 환경.식품위생 등 기술규정이 신규 가입국에도 적용됨에 따라 우리의 수출을 저해하는 비관세 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도 세심한 주의가 요망된다.

현재 EU는 미국과 함께 세계 경제의 양대 축으로 이미 우리의 3대 수출시장이자 4위의 교역 파트너다. 특히 1998년 이후 우리나라는 EU와의 교역에서 매년 50억달러 내외의 무역흑자를 기록하는 등 외화 획득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상대다. 우리의 대(對)EU 수출이 연간 약 2백50억달러 정도로 그 규모가 크기는 하지만, 우리 상품의 대EU 수입시장 점유율은 2.3% 정도로 대미국(3.0%).대일본(4.9%).대중국(10.5%) 등 주요 시장에서의 우리 상품 점유율보다 상대적으로 낮다는 사실은 자동차.선박.반도체 등 우리 주력 품목의 대EU 수출확대 여지가 아직도 크다는 사실을 방증해 주고 있다.

그러나 EU의 국제적 위상 제고와 우리 국익에 미치는 중요성에 비추어 EU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한심하고 부끄러운 수준이다. EU의 수도인 브뤼셀에는 변화하는 EU의 정책결정 과정을 취재하기 위해 워싱턴보다 많은 1천여명의 외국 특파원이 상주하고 있고, 전 세계 기업과 비정부기구에서 파견한 로비스트의 숫자만 자그마치 1만여명에 이른다. 또한 세계 굴지의 다국적 기업 2천2백여개가 브뤼셀에 주재하고 있다. 단 한개의 기업만이 브뤼셀에 유럽본부를 두고 있는 우리의 현실과 너무도 분명하게 대비된다. 우리의 EU 수입시장 점유율이 중국과 일본의 8.2%, 6.9%에 훨씬 못 미치는 2.3%에 그치고 있다는 사실은 우연한 결과가 아닌 것이다.

EU의 변화는 우리에게 기회와 더불어 도전을 제공하고 있다. 향후 정치.경제적으로 미국 및 동북아와 함께 세계의 중심으로서 기능하게 될 EU. 그 EU의 중요성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명확히 하고 범국가 차원에서 EU의 변화과정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대비를 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준비를 통해 대EU 경제.외교 역량을 강화해 나가는 것이 주어진 기회를 활용하고 도전을 극복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그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필자가 근무하는 주(駐)EU대표부에서도 EU 확대의 해인 갑신년을 맞아 재단장한 공관 홈페이지를 통해 EU의 변화하는 모습을 우리 국민에게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다.

오행겸 주 벨기에 겸 EU대표부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