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없는외국기업>下.국내업체 국제화 아직 걸음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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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뉴욕=李孝浚특파원]지난90년 멕시코정부는 수출촉진을 위해 自國의 주요기업들에 총 2억달러에 달하는 자금지원계획을 마련하고 이 업무를 멕시코개발은행에 맡긴 적이 있었다.
그러나 멕시코개발은행측은 당시 보유자금이 넉넉지 않았던데다 멕시코기업들의 신용도가 낮아 해외차관마저 구하기가 힘들어 쩔쩔매고 있던중 美國의 종합금융.컨설팅회사인 에코반社가 나타났다.
멕시코지사를 통해 이같은 사실을 입수한 에코반社는 멕시코개발은행측에 자금조달업무의 대행을 제안했고 은행측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에코반社의 복안은 당시 日本기업들이 엄청난 흑자로 자금이 풍부했지만 오히려 이때문에 美國등으로부터 심한 견제를 받고 있는 상황을 이용해 자금을 이끌어 낸다는 것.
자사의 日本通들을 동원해 日本기업및 정부관계자들에게「넘치는 자금을 美國의 인접 우방인 멕시코에 지원하면 부시정부의 환심도사고 흑자에 대한 비판도 다소 줄어들 것」이라는 점을 설득했다. 에코반社의 이같은 계획은 그대로 적중,이토추.마루베니.미쓰비시등 일본의 3개종합상사가 공동책임으로 멕시코개발은행에 차관을 제공하게 됐고 에코반社는 은행측으로부터 보통의 경우보다 훨씬 많은 수백만달러의 수수료를 받았다.
전세계를 누빌 수 있는 인력과 조직,그리고 국제적인 감각만으로도 피땀흘려 상품을 만들어 파는 것 못지않은 수익을 올린 셈이다. 에코반社는 다음해 국내의 선경그룹에 인수됐는데 당시「제조업체도 아닌 이상한 서비스업체를 인수해서 뭘하느냐」는 국내의우려에도 불구,선경측이 인수를 강행한 것도 바로 이기업의 이같은 글로벌한 능력때문이다.
鮮京아메리카의 金榮萬부회장은『에코반의 인수는 기업자체뿐 아니라 국제화에 필요한 인적자원.조직.노하우까지 함께 흡수한 셈』이라며『이로인해 우리는 국내제품의 수출차원을 벗어나 국제원유의중개거래와 선물거래에서부터 국제시장에서의 금융, 기업 인수합병에 이르기까지 과거에는 엄두도 못냈을 고부가가치의 국제사업까지시도할 수 있게됐다』고 설명한다.
鮮京측은 이후 에코반社의 드미트리우스사장을 선경아메리카의 사장으로,IBM인사담당이사 올슨을 임원으로 각각 영입하고 전체 2백명직원중 1백80명을 美國人.교포2세등으로 충원하는등 人的측면에서 완전한 현지화를 시도해오고 있다.
하지만 鮮京의 이같은 활동은 아직까지는 초기단계에 불과하다.
三星.現代.金星등 나머지 주요대그룹의 경우도 해외에 공장을 설립하는등 국제화를 나름대로 추진하고 있지만 여전히 제조업중심의수출에 의존해있고 인력 또한 주재원중심이어서 한 계가 있다는 것이 이곳 외국기업관계자들의 지적이다.
多國籍컨설팅회사인 매킨지社의 앨런 메릴 뉴욕지사장은『오늘날의국제기업들은 해외투자를 통해 생산.판매.금융활동을 분산시키거나다른기업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비교우위점을 찾아가고 있다』며『어떤 한 기업이 그 기업이 속한 국가내의 노 동력.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품질.가격면에서 경쟁력을 찾는다는 것은 이미 과거의 개념』이라고 말한다.
日本기업들이 과거 베타방식의 VTR나 애널로그형 고화질TV와같은 뛰어난 제품을 개발해놓고도 해외시장 推移에 대한 판단부족과 美國.유럽기업들이 서로 제휴해 내놓은 VHS방식의 VTR,디지틀형 고화질TV에 밀려 사실상 실패로 끝나버 린 것도 국제화능력의 필요성을 입증하는 사례라는 지적이다.
더구나 전세계시장의 단일화로 이념과 국경을 초월한 경제활동이벌어지는 상황에서 앞으로의 경쟁구도는 기업對 기업이지,국가對 국가가 아니라는 것이다.나아가 국가의 힘이라는 것도 국제화된 기업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가로 바뀐다는 이야 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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