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獨 역사속의 11월9일과 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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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獨逸人들에게 11월 9일은 그들의 표현처럼「운명의 날」이다.
20세기들어「역사적」이라 할수 있는 사건들이 유독 이날을 택해집중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이다.특히 이날에 일어났던 사건들은 세계사에 있어 크고 작은 분수령이 되기도 해 독일 역사와 현대 세계사의 밀접한 관련성을 느끼게 해주는 대목들이다.
우선 1918년 11월9일 제1차세계대전에 패한 독일 제2제국의 빌헬름 2세가 퇴위,독일 역사상 최초의 민주정부인 바이마르공화국이 탄생했다.이어 1923년 이날 히틀러가「국민혁명」의기치를 내걸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쿠데타에 실패한 히틀러는 5년형을 선고받고 옥중에서 유명한『나의투쟁』을 집필했다.
1938년엔 인류 최대의 죄악으로 일컬어지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시작된 이른바「크리스탈 나하트(수정의 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에게 의미가 크고 기억에 생생한 11월9일의 사건은 4년전인 1989년의 베를린장벽 붕괴다.당시 TV를 통해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지켜본 우리는 마치 휴전선이 붕괴되는 듯한 진한 감동을 맛보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독일은 통일을 달성할 수 있었으며 나아가 동서 냉전에의한 인류파멸의 핵전쟁 위험마저 크게 축소시킨 20세기 후반 최대의「멋진」사건이었다.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독일은 물론 전세계는 우울한 일들로 가득차 있다.
통일의 후유증과 때마침 몰아닥친 전세계적 경기침체로 실업자가전후 처음으로 3백50만명을 넘어선 가운데 연일 해고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의 데모가 벌어지고 있는게 독일의 현실이다.
미국의 한 연구기관이 발표한 보고서는 지난 한해 세계 곳곳에서 모두 29건의「대규모 전쟁」이 새로 일어나 2차대전 이후 기록적인 6백만명이 숨졌다고 고발하고 있다.
세계무역을 진전시키기 위한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은 무산위기에 처해 있으며 오히려 세계 각국은 보호무역 움직임을 강화하는 추세다.
90년대 들어 한반도 주변의 국제정세는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첨예하게 대립하는 현장이 되고 있으며 北韓의 핵무기 개발의혹이돌출해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독일의 오늘은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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