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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간다>73.스리랑카-고대문명 찬란한 열대 불교성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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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인도양의 녹색섬.아름다운 열대자연속에 찬란한 고대문명이 살아숨쉬는 스리랑카.남한의 3분의 2크기의 작은 섬이지만 스리랑카는 실로 많은 얼굴을 갖고 있다.
열대동물보호구역에 펼쳐진 야생동물의 천국과 원시의 모습을 간직한 자연풍광속에 점재한 불교성지와 고대왕국의 유적지,그리고 식민지풍이 물씬한 옛도시들.
여기에 세일론 루비로 알려진 유명한 보석생산과 산등성이를 타고넘으며 이어지는 산악 지대의 茶플랜테이션등도 빼놓을수 없다.
스리랑카는 싱할리어로「빛나는 섬」이란 뜻이다.
세일론은 16세기 포르투갈인들이 붙인 이름.
아리안계인 싱할라족은 기원전 5세기 인도 남부에서 이 섬으로이주해 원주민들을 정복하고 싱할라왕국을 세웠다.싱할라족은 불과30㎞밖에 떨어지지 않은 남인도로부터 타밀족이 계속 침입하는 가운데서도 1815년 영국의 식민지가 되기까지 약2천년간 왕국을 유지해 고대국가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자연과 고대유적,그리고 관광휴양지가 함께 있는 스리랑카는 인도양의 조용한 나라에서 새로운 국가발전의 도약을 꾀하고 있다.
차.고무.코코넛의 주요산물외에 천혜의 관광자원에 새롭게 눈을 돌리고 있다.특히 지난 80년대 정치적 격변을 겪 으며 관광객수가 반감한 스리랑카는 정부차원에서 관광산업진흥에 최대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불교는 스리랑카인들의 생활 그 자체이며 불교유적은 고대왕국의유산과 함께 귀중한 관광자원이다.
섬 곳곳에 불교유적들이 산재해 있는데 중부 구릉지대의 캔디는스리랑카 전통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중세도시로 부처님의 치아를 봉안한 佛齒寺가 있다.
부처님 치아는 4세기께 인도남부의 칼링가지방에서 가져온 것으로 싱할라왕조의 상징이기도 하다.
팔각지붕에 핑크빛 담장이 쳐진 불치사는 세계적 불교성지로서 유명하다.또 이곳을 중심으로 매년 캔디 페라헤라축제가 펼쳐진다. 매년 7월말부터 8월초까지 10일간 열리는 캔디 페라헤라축제 때는 코끼리 등에 태운 부처님 치아가 시내를 돌며 일반에 공개되며 수십마리의 코끼리,승려,캔디전통무용수들이 그 뒤를 따라 볼만한 장관을 이룬다.
불교의 나라 스리랑카에서는 집안이나 마을입구에 반드시 불단이모셔져 있다.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 불단에 향공양을 올리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저녁6시무렵 불단에 불을 밝혀 기도시간을 가지면서 하루를 마감한다.
낮시간에도 마을어귀의 불단앞을 지날때는 예를 올리며 지나가는버스나 트럭도 일단 멈춰서서 예를 올리고 떠나는 게 보통이다.
만날 때나 헤어질 때도 다분히 불교식 인사를 나누는데「아유보완(안녕)」이란 인사말과 함께 합장하고 서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나눈다.
시기리야는 스리랑카의 고대유적 가운데 가장 낭만적이고 슬픈 이야기를 간직한 곳으로 아름다운 고대 싱할라여인들의 모습이 벽화로 남아있다.
평원에 우뚝 솟아 있는 높이 1백80m의 깎아지른 바위산 위에 요새겸 왕궁을 지은 곳이 시기리야다.이곳을 만든 사람은 5세기께 싱할라왕국의 카샤파왕.왕은 원래 서민출신의 궁녀몸에서 태어난 서출왕자였다.부왕 다이세나왕이 자신을 제치고 이복동생에게 왕위를 양위하려하자 반란을 일으켜 부왕을 죽이고 마는데 인도를 등에 업은 이복동생의 복수가 두려워 깎아지른 바위산 위로도망치고 자살할때까지 그 바위산 꼭대기에서 살았다고 한다.나중에 부왕을 죽인 회한으로 번민한 왕은 히말라야산 위에 신들의 도시를 짓겠다던 부왕의 뜻을 받들어 이 요새형 궁전을 지었는데절벽을 기어오르는 협도외에는 접근할 수없는 공중궁전이다.
시기리야 미녀라고 불리는 벽화는 왕과 함께 이곳으로 도망친 부하들이 고향에 남은 아내와 연인들을 그리워하며 천녀의 모습으로 그들의 자태를 그린 프레스코畵다.원래는 바위 절벽 곳곳에 5백명 정도를 그려놓았다고 하나 현재는 세월에 깎 여 10여명의 모습만 남아 전한다.
문화유적 삼각지의 또다른 거점인 포론나루와는 중세 싱할라왕국의 수도.11세기초 타밀족의 침입을 피해 이주해 세운 이 고대도시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궁전,왕실목욕탕,파빌리온 등이 열대정원과 조화를 이루며 펼쳐져 있다.싱할라왕국의 고대 건물들은 반드시 입구에 半月石이란 기단이 장식된게 특징이다.반원형 돌에 동심원을 새기고 그 안에 코끼리.사슴.사자상과 당초문을 차례로정교하게 새겼는데 1천년넘게 사람들이 밟고 지나갔어도 생생한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반월석이 놓임으로써 그 위의 건물이 태양의 신전임을 상징하는데 반월석은 시대마다 약간의 양식적차이를 보여 싱할라왕국 흥망성쇠의 일단을 엿보게 한다.
또 포론나루와유적 내에는 길이 13m의 臥佛과 높이 7m의 아난존자立像등 불교유적이 함께 있어 연중 끊임없이 불교신자들이찾고 있다.
콜롬보를 중심으로 니감보 벤토타 히카두와 골등 해변에는 연이어 휴양지가 펼쳐져 있으며 어느곳이나 고운 모래밭이 에메랄드빛바다와 해변 야자수 사이에 길게 뻗어있어 특히 열대태양을 탐하는 유럽인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아시아의 끝에 위치해 중동이 시작되는 스리랑카는 생각보다 우리나라와 인연이 많은 곳이다.
삼국시대 당나라를 거쳐 인도로 구법여행을 떠난 고구려.신라.
백제의 고승 10여명이 스리랑카를 거쳐가기도 했고 스리랑카에 머물며 불법을 구했다는 기록들이 전한다.
현재도 풍속과 언어면에서 한민족의 남방기원설을 설명할 수 있는 자료를 풍부히 찾을수 있다.예를 들면 싱할라어로「밥」을「받」이라 하고「쌀」을「할」이라고 하는등 경상도나 제주도 단어와 유사한 말을 자주 들을수 있다.또 중부산악지대로 들어가면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굴렁쇠놀이와 땅뺏기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쉽게 찾아볼수 있다.
스리랑카 인구의 70%이상인 싱할라인들은 낙천적이며 쾌할한게특징이다.길거리에서 다투는 사람을 거의 찾아볼수 없으며 손님에대한 친절과 대접이 극진하다.이러한 민족성은 인도대륙이 영국식민지로부터 독립하면서 많은 피를 흘린 것과는 달리 영국과 거의마찰없이 자치국을 거쳐 스리랑카가 독립할때 확인된다.
독립이후부터 사회주의를 고수해온 스리랑카는 민족적 자존심이 강한 나라이기도 한데 박물관등에서 외국인 입장객에게는 내국인의몇배에 해당하는 입장료를 받고 있다.
새로운 도약을 준비중인 스리랑카는 지난해부터 2001년까지「수출의 시대(Decade of Exports)」를 선포하고 신흥공업국(NICS)의 대열에 올라선다는 계획을 추진중이다.
현재 스리랑카에는 70여개의 한국기업이 진출해 있으며 매년 3천명이상의 불교신도와 관광객들이 스리랑카를 찾고 있다.
〈尹哲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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