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작은평양 속에 사는 북경의 북한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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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北京은 한국.북한인들이 같은 생활공간에서 어울려 살아가는 유일한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초.중.고나 대학에서 남북한 학생들이 같은 반으로 매일같이 얼굴을 맞대고 지내고,北韓과의 무역은 물론 북한의 특산물이나 골동품 밀매상까지 한국 사람들과 손을 잡고 거래를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같은 공동의 장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결론부터 말하자면 북한은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中國에서도「작은 平壤」을 만들어놓고 물 위의 기름방울처럼 따로 살아가고 있다.북한이 경영하는 음식점이나 가라오케에 한국손님 이 찾아드는광경을 보면 반드시 그런 것이 아니지 않느냐는 반론이 나옴직하다.그러나 그것은 한국쪽 입장일 뿐이다.북한인들이 허가없이 한국인은 물론 「외부인」과 접촉하는 것은「하루밤 사이에 행방불명」되는 불행을 자초하는 일인 것이다.
학생들 사이에도 예외는 없다.개인행동이나 불필요한 언행은 아무도 범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북경의 명문대학 중국 여대생이 최근 북한 유학생과 열렬히 연애하다 실연당했다.두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다만 이들 관계가 주위에 드러나게 되자 본국 강제 소환이 두려워진 북한 학생이 눈물을 머금고 물러선 것이었다.한 북 한인은『북경의 한국인들의 신상을 훤히 알고 있다』고 장담하기도 했다.밀고와 감시가「작은 평양」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북경의「작은 평양」의 중심은 당연 駐북경 북한대사관이다.
대사관에는 朱昌駿 대사등 48명의 외교관과 그 가족들,조선중앙통신.노동신문 특파원,그리고 무역관계자들이 입주해 있다.80년대 중반 부임해 근8년째 대사직을 맡고 있는 朱昌駿은 기회있을 때마다(한국기자들은 빼고)日本과 西歐기자들을 모아놓고 충성발언을 해 점수를 딴 탓인지 북한 해외근무의 꽃이라는 북경대사직을 장기 집권하고 있다.
중국인 택시 기사들은 북한사람 이야기만 나오면『아주 가난하다』면서 아는체 해댄다.그러나 아무나 가난한 것이 아니다.지위와신분에 따라 빈부격차가 뚜렷이 나뉜다.
특권층은 소비형태에서 보통백성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일류백화점에서 북한 여자들이 한국산 의류를 골라 사기도 하고 북한 학생들 사이에는 한국의 유행가 테이프가 최고인기 품목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겨울로 다가서는 요즘 北京의 한국 인 가정에서는 얼굴 모르는 북한인들을 위해 헌옷가지를 모아 전달하는 경로가 있다.맨발이거나 짚신을 엮어 신고 지낸다는 참상을 들으며 물밑으로 인정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북경의 북한인들 대부분은 해외생활을 하고 있다기보다 그야말로「 우리 식대로 살자」는 구호대로 북경에서조차 마치 평양에서 사는 것처럼 지내고 있는 셈이다.
[北京=全擇元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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