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실업자 느는데 팔짱낀 정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친지가게서 잠깐 일봐준 경우도 “직장인”/취업포기 노는 사람은 실업인구서 제외/현실과 먼 통계… 적절한 대책 못나와
취업시즌이 다가왔는데도 멀쩡한 고학력 인력들이 일자리를 못구해 쩔쩔매고 있다. 경영합리화,「압축경영」이란 구호아래 직장에서 쫓겨나는 40∼50대 중견 간부들도 적지 않다. 최근 우리 경제가 불황터널을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하면서 우리 주변에서 이같은 실업인구 증가현상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실질성장률이 지난해 4.7%에 이어 올해는 4%를 겨우 넘을 것으로 예측되고 내년도 전망도 별로 밝지 않다는 점에서 실업걱정은 부쩍 커지고 있는 요즘이다.
그런데도 정부당국은 실업의 「사회파괴력」을 별로 경험해보지 못한 탓인지 아직도 실업문제에 이렇다할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 같다. 정권유지에 가장 큰 변수라는 시각아래 선진국들이 가장 신경쓰는 통계가 실업률인데도 그렇다.
○내년 더 높아질듯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실업률은 2.4%였다. 91년에는 2.3%로 실업통계를 낸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기도 했다. 완전고용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그러던 것이 올 상반기에는 3.0%로 부쩍 높아졌다. 지난 8월엔 2.9%였다.
내년에는 3.3∼3.4%까지 높아질 것으로 노동부는 예상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도 3.2%로 예측한다.
실업률이 올들어 상당히 높아지긴 했지만 선진국들에 비하면 별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다.
지난해 미국의 실업률은 7.4%,영국 9.8%,독일 7.7%,캐나다 11.3%,프랑스 10.25였다. 일본만이 2.2%로 우리보다 낮다.
그러나 우리나라 실업률이 이렇게 낮은 것은 국제노동기구(ILO) 방식에 따라 너무 「고지식하게」 통계를 산출하는 것이 한요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취업기준에 허점
○…현행 실업통계의 가장 큰 결함은 일부 실업자까지도 취업자에 포함하는 것이라고 한국노총의 조한천 정책연구실장은 지적한다. 15∼60세인 사람 가운데 돈을 벌기 위해 1주일에 1시간 이상만 일하면 취업자로 분류되는 비현실적 기준이 문제인 것이다.
일자리를 못구해 놀다가 친척이 하는 가게에서 잠깐 일을 봐준 사람도 취업자다. 취직을 못해 중·고생 아르바이트를 해도 정부 통계로부터는 엄연한 취업자로 「대우」 받는다.
이에 대해 통계청의 강계두 사회통계과장은 『미국이나 일본도 같은 방식으로 실업통계를 내고 있으며,국제간 비교를 위해서도 우리만 특별한 방식으로 조사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선진국의 경우 산업구조가 현대화돼 이같은 식으로 조사해도 우리보다는 현실과의 괴리가 적다.
예컨대 농림어업 종사자는 대부분 1주일에 1시간 이상 일해 취업자로 간주되는데,우리의 경우 농림어업 종사자 비율이 16%로 미국의 3% 미만에 비해 월등히 높다. 같은 방식으로 조사할 경우 우리나라 실업률이 실제보다 낮게 나타날 소지가 많은 것이다.
또 일자리를 구하다 포기하고 집에서 노는 사람은 실업자가 아니다. 구직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돼 실업통계에서 아예 제외되는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될 뿐이다.
○“보조통계 시급”
○…사실은 실업자인데 통계조사 시점에 잠깐 일하면 취업자로 간주되나,신병 등으로 일시적으로 쉬는 경우는 실업자로 분류되지 않는다. 「형평」에 어긋나는 통계작업이라는 지적이 나올만하다. 취업자를 늘리는 쪽으로만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이와함께 표본가정을 방문해 실업여부를 조사하는 현행 조사방식도 실업률을 낮추는 측면이 있다. 놀고 있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해 사실대로 응답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실업보험이란 제도가 정착된 유럽국가들은 가정방문에 의하지 않고,보험을 타기 위해 직업안정소에 실업자로 등록한 사람을 조사해 통계를 낸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95년부터 이런 제도가 시행될 예정이어서 현재로서는 방문조사외에 달리 방도가 없기는 하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이원덕부원장은 『국제비교를 위한 현행 조사방법외에 노동시장의 실상을 좀더 정확히 반영하는 보조통계를 개발하는 노력이 아쉽다』고 말했다. 현실을 제때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통계는 「죽은」 통계일 뿐이다. 이런 죽은 통계로 타이밍있는 정부대책이 나올 수는 없는 것이다.<심상복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