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진작이 더 급하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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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선공무원이 안 움직인다고 정부가 뒤늦게 법석이다. 여객선참사로 나사풀린 행정실태가 확인되자 연일 대책회의를 열어 공직사회의 활성화 방안에 골몰하고 있다. 일선공무원들의 이른바 보신주의·적당주의·무사안일 등의 풍조가 벌써 언제부터의 일인데 대형사고가 있고나서야 대책강구에 나서는 정부가 딱하다.
정부 스스로 일선공무원들이 땅에 엎드려 움직이지 않는다고 「복지부동」이라고 표현했다. 또 22일 열린 각 부처 기획관리실장 회의에서는 『현재의 공직분위기가 얼어붙어 있고 상하간에 보이지않는 벽이 있어 개혁바람이 밑에는 스며들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우리가 보기에도 솔직한 표현이요,진단이다.
우리는 이런 현상에 대해 정부가 강조하는 기강확립과 의식개혁이 물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공직사회의 문제가 왜 이렇게 심각하게 됐는지 그 원인부터 살펴야 올바른 개선책이 나오리라고 본다. 전·노정권 때도 공무원 병폐는 엄연히 있었지만 김정부 들어 왜 더 나사가 풀리고 움직이지 않는 현상이 나타났는지를 따져봐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이런 현상은 김정부의 개혁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과거비리에 대한 강력한 사정과 재산등록·실명제 등은 불가피하게 공무원 집단의 위축과 사기저하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대가를 각오하고라도 사정과 개혁은 추진할 일이지만 예견되는 공무원사회의 기능저하에 대한 정부의 고려가 있었어야 했던 것이다. 사정한파속에 공직자들이 부패집단,또는 우범자시되고 언제 무슨 일로 당할지 모른다는 분위기에서 공무원들이 적극성을 발휘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가령 봉투를 받지 말라는 지시가 엄격하고 감시가 삼엄해진 것은 나아진 현상이지만 봉급이나 출장비·활동비가 너무나 비현실적이라면 봉투에서라도 나오던 행정서비스마저 사라지게 마련이다.
또 한가지 원인은 새정부 상위직의 능력부족과 미숙에도 있다고 본다. 조직을 장악·가동시키고 사기를 유지하며 외풍을 막아주는 것이 상위직들이 할 일인데 김정부의 상층부는 확실히 이런 역할을 다하는데 충분한 역량을 보이지 못했다.
이런 사정을 생각한다면 정부가 말하는 중·하위직에 대한 사정강화나 특별점검 등 처벌·감시보다는 사기를 높이고 분위기를 개선하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본다. 무엇보다 공무원들이 자존심을 갖고 국가발전의 중추역할을 한다는 보람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긴요하다. 어기면 처벌하겠다는 방식은 공무원들의 「부동」을 가중시킬 것이다. 이제부터는 궁극적 목표를 부여해 「하면 승진한다」 「더 하면 상 받는다」는 방식이 나와야 한다. 물론 처우개선도 시급하다. 적어도 조직이 가동되고 필요한 기능이 발휘되는데 따르는 최소한의 비용은 뒷받침돼야 한다.
정부는 좀 더 입체적인 시각으로 공무원사회의 활성화를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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