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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병욱칼럼>사고예정론에서 벗어나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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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서해페리호 침몰사건이 일어난 다음날 아침 논설회의에서 반년남짓 새에 陸.海.空에서 대형 慘事가 났으니 다음은 地下 차례인가 라는 말이 나왔다.이런 저런 걱정이 오가면서 말이 씨가 된다는데 그런 얘기는 그만두자는 의견도 있었다.그 직후에 들어보니 편집국 회의에서도 다음 차례는 지하가 아니냐는 똑같은 걱정이 오갔다는 것이다.
사람들 생각은 비슷한 것인지 그 얼마후 시중에 밑도 끝도 없이「다음 차례는 지하철이라더라」는 루머가 나돌았다.그때쯤은 걱정 섞인 푸념으로가 아니라 예정론적인 重壓感을 담고 있었다.
무심결에 말이 튀어나온다든가 사람들의 걱정이 비슷하게 돌아간다고 해서 다음 차례는 어디라는 式의 예정이 있을 리는 없는 일이다.그것은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한 운명의 作戱에 대한 예감이라기보다 우리 주변의 문제점에 대한 잠재의식의 발로라고 봐야할 것이다.많은 사람에게 다음 차례는 지하철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건 지하철의 구조와 운용의 안전성에 대한 믿음이 깊지 않다는 反證일 것이다.
비단 지하철 뿐이겠는가.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사방에 대형 사고의 위험이 즐비하다.그동안 개발하고 만드는 데만 온통 정신을쏟다보니 예술성이나 안전도에는 소홀했던 게 사실이다.보다 적은비용으로 더 많이,더 빨리 만드는 게 美德처럼 된 세상을 살다보니 安全을 의식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그렇게 한 30여년 급하게 서두른 결과는 곳곳에 허점 투성이다.작은 사고의 위험은말할 것도 없고 대형 사고의 위험이 방치되어 있다.
지난해 南海의 창선대교와 건설중이던 幸州大橋가 붕괴된후 교량의 안전도가 크게 문제됐으나 세월이 가면서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그러나 정작 관계부처의 안전점검및 감사원의 조사 결과 상당수 중.대형 교량의 안전도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교각의 철근이 규격 미달인 곳이 숱하고,심지어 철근의 콘크리트가 모두 떨어져나가 교각이 지반에서 떠있는 곳마저 적지 않았다. 新都市의 일부 아파트 不實시공도 이미 오래전부터 문제가되고 있다.건축 과열기의 자재難에 따른 규격미달.불량 자재의 사용과 새로운 工法에 대한 未熟이 겹쳐서 였다.그러나 시공자에의한 하자보수는 당장의 생활불편을 더는 정도에 그칠 뿐 아파트구조의 취약성을 補强하는데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서민아파트인 와우아파트와는 비교할 수 없다고 하겠지만 맨션아파트도 홍콩에서붕괴 대참사를 빚었던 것을 보면「맨션아파트」란 이름만으로 붕괴위험에서 해방되는 것은 아니다.아파 트 뿐 아니라 이 시기에 土超稅를 피해 雨後竹筍格으로 세워진 무수한 고층빌딩 중에는 不實빌딩이 적지 않다고 들린다.또 첨단 사회간접시설인 고속전철 터널공사와 수도권 電鐵공사에도 不實이 문제되고 있다.심지어 댐공사에도 시공자와 운용자 가 다른 데서 오는 문제점등 공사의 견고성에 문제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이런 대형 구조물이 붕괴된다고 생각해보라.그 피해와 충격이 얼마나 크겠는가.
이번 페리호 참사 이후 지하철을 비롯,제반 공사현장에 대한 안전점검이 강화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그러나 사고후 으레 따르던 반짝 강조주간으로 그칠까 걱정이다.현재 공사가 진행중인 것은 물론 이미 공사가 끝나 사용중인 대형 구조물 ,대형 건물에 대해서도 꼼꼼한 안전점검이 필요하다.
안전점검에서는 구조적 견고성과 안전성 외에도 기능적 안전.편의성이 고려되어야 한다.특히 아파트등 대형 건물의 경우에는 구조.기능 점검 외에 화재등 비상대비태세 점검도 필요하다.화재에대비해 스프링클러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소화 기는 실제 쓸수 있는 것인지,비상탈출방안은 제대로 돼 있는지,이런 점에 대해 정기적인 점검은 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봐야 한다.모양만 갖춰놓고 실제 비상시에는 쓸 수 없는 것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70년 대연각호텔 화재때 우리는 高架사다리車가 없어 많은 투숙객이 희생되는 것을 보았다.그 후 서울등 대도시에는 부족하나마 고가사다리차가 갖추어졌으나 고층아파트가 중소도시에까지확산되고 있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안전 투자에는 돈이 든다.그러나 사고가 날 경우의 사회적 비용을 생각하면 안전 투자가 훨씬 경제적이다.경제적일 뿐 아니라인도적이고 효율적이다.그것은 또한 선진국의 지표이기도 하다.
***지속적 安全투자 필요 사회간접시설 투자의 일정 몫은 이미 건설된 시설의 안전도를 높이는 데 쓰여야 한다.동시에 시공자와 민간건축주의 안전을 위한 하자보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다만 낮은 분양가격으로 인해 분양때 포함되지는 않았으나 안전을위해 꼭 필요 한 부분에 대해서는 入住者들도 비용을 부담해서라도 완벽하게 손을 보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이런 연속 대형 참사에서도 安全에 대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우리는 다음 차례는 어디라는 事故예정론의 重壓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라와 국민이 되고 말 것이다.
〈論說主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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