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없는 죽음(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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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죽음을 신학적으로는 「육신의 분해」로 본다. 영혼을 잃고 분해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구상의 많은 종교들은 설혹 육신이 분해되어 흙으로 돌아간다해도 영혼은 존속되며 언젠가는 재생한다고 믿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생명에 대한 존엄성과 마찬가지로 죽은 자의 육신도 가장 정중하고 경건하게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이와관련해 영국의 석학 아널드 토인비는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장례 치르는 방법이 아무리 다양할지라도 인간의 육신에 대한 존엄성은 생전이나 사후나 다를 것이 없다. 그러므로 시신이라 하더라도 폐품처럼 취급받거나 낡아서 기운 구두조각처럼 버림받아서는 안된다.』
이같은 토인비의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면 영혼과 시신을 동일시한 원시시대의 신앙과 통하는 바가 있다. 그들은 시신이 없으면 영혼도 존재할 수 없다고 믿었다. 천재지변에 의해 육신이 흔적없이 사라진 경우에는 절대자의 힘을 가진 신에 의해 육신과 영혼이 함께 회수됐다고 믿은 것이다. 이같은 원시시대의 사상은 기원전 8세기께 씌어진 호메로스의 장편 서사시 『오뒷세이아』에도 잘 나타나 있다.
현대사회에 이르러 시신을 죽음의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천재지변조차 인간의 힘,과학의 힘으로 극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람의 잘못 탓으로 시신의 행방을 찾을 길 없는 죽음의 경우가 이따금 생겨 유족들을 2중의 고통,2중의 비극속에 빠뜨리게 한다. 몇년전 미국 케이프 카내베랄에서의 유인우주선 공중폭발 참사가 그렇고,이번 서해페리호의 침몰사건이 그렇다.
원시시대 때의 시신없는 죽음들처럼 육신과 영혼이 함께 하늘로 올라갔다고 생각하면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을는지 모르나 유족들의 입장이 되고보면 몇몇 사람들의 잘못 탓으로 생명을 앗긴 것만도 억울하고 분한데 시신조차 찾지 못한다면 그 기막힌 심정이 어느 정도일까 짐작되고도 남는다. 더구나 아직 시신없는 죽음의 정확한 숫자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시신을 찾은 유족들이 찾지 못한 유족들을 위로하는 모습이 우리 모두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한다. 배가된 슬픔의 절반을 덜어주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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