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 풀린 행정체계(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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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해페리호 침몰사고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내실없이 엉성하게 웃자라기만한 사회인가를 잘 드러내주었다. 갑작스런 경제성장에 우쭐해있고,선진국으로 발돋움 한다고 큰소리를 치기도 하지만 이번 사고를 통해 그 실상을 보면 선진국으로의 길은 아직 한참 멀었음을 알 수 있다.
사고가 난지 이틀이 지나도록 승선인원조차 깜깜이다. 사고선박도 행정당국에는 아무런 신고도 없이 출항해 제멋대로 운항하고 승객을 태우고 내렸다. 이런 장님행정,게으름 행정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사고가 난 뒤의 대처로 도무지 행정체계라고는 없는듯 갈팡징팡이었다. 동작이 굼뜨고 구조체제도 갖춰져 있지 않아 생존자는 모두 부근 낚시배나 어선이 구했지 정작 당국은 한 사람도 구조를 못했다. 경찰은 사고소식을 발생 5분만에 신고받았으나 당황한 나머지 헬기를 먼저 띄워야할 것을 구조함부터 보내느라 시간을 흘려보내 아무런 역할도 못했다. 이런 태세로 앞으로 또 어떤 큰 실수를 할는지 걱정이다.
해상교통 안전업무는 항만청·수산청·내무부로,해상교통안전관리 구역은 해양경찰청·해운항만청으로 각각 갈려 해양교통에 관한 총괄기능이 없음도 드러났다. 또 사고발생시의 종합적 긴급 구난체제가 평소에 마련되지 않아 총리가 뒤늦게 진두지휘를 해야 겨우 관련부처의 협조가 이루어지는 형편이다. 군장비가 아니면 구조장비도,구조인원도 태부족이고 부상자의 응급후송체계나 전문 구조요원도 마련돼 있지 않음도 밝혀졌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행정이 도무지 기초가 없고 무질서하며 기본을 갖추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개혁의 바람이 불긴 했다. 그러나 그 개혁은 이제껏 고작 상승부의 일부를 대상으로 한 인적 청산에 그쳤을 뿐이다. 그러한 작업도 물론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 개혁은 이제껏 고작 상층부의 일부를 대상으로 한 인적 청산에 그쳤을 뿐이다. 그러한 작업도 물론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진짜 행정을 개혁하려 한다면 그러한 인적 청산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민생과 직결되고 나라살림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초적 행정시스팀이나 기본 골격의 허술함을 보완하고 짜임새를 갖추는 일일 것이다.
아래서부터 차근차근 고쳐나가는 방식보다는 바람을 일으켜 상층부의 사람부터 치는 식의 개혁이요 사정이다 보니 가뜩이나 체계가 안 잡히고 기초가 부실한 행정이 더욱 달뜨고 어수선해진 느낌마저 있다. 정부로서는 사고의 원만한 수습과 책임자 문책,그리고 연안여객선사고의 재발방지책 마련이 당장에 급한 일이겠으나 숨을 돌리는대로 이번 일에서 드러난 일선행정의 허점들을 하나하나 챙기고 보완하는데 힘을 집중해야 한다.
그래서 국민들이 피부로 접촉하는 일선행정이 짜임새있게 변화해야 일반국민도 비로소 개혁의 성과를 실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개혁도,사정도 행정말단에까지는 전혀 확산되지 못했다. 그것이 이번 사고가 정부에 주는 또 하나의 가르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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