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대기업 채용제도(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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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취직의 계절이 찾아왔다. 대학과정을 끝내고 사회에 진출할 날을 눈앞에 둔 30여만명(전문대 포함)의 젊은이들은 이때쯤이면 가슴설레는 보람과 함께 희망해온 직업을 얻어야 하는 부담으로 머리가 가볍지 않다. 더구나 올해처럼 근래 드문 불황으로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워진 상황에서는 정신적 부담 또한 더하게 마련이다.
그런 가운데도 삼성·럭키금성 등 적지않은 대기업에서 예년 못지않은 신규인력을 모집하기로 하고,선발제도를 전공에 관계없이 건전한 상식을 갖춘 유능한 인재를 뽑아내도록 바꾸었다는 소식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경제가 어려운 때일수록 유능한 인재를 보다 많이 확보하겠다는 대기업다운 발상의 참신성이 돋보인다. 거기에 더해 치열한 국제경쟁속을 헤쳐나갈 수 밖에 없는 대기업으로서는 신통치 않은 여건에서 길러진 대학의 전공실력보다 창의력이나 판단력이 중요한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는 앞에 열거한 이 두가지 우리기업의 바람직한 방향과 대학교육의 앞날에 의미있는 시사를 던저준다고 보고 새로운 기업문화와 대학교육 방향에 긍정적으로 정착되기를 기대한다.
어려울수록 인재를 더 많이 확보하겠다는 이들 기업의 선각은 실은 경제선진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이웃 일본에서도 엊그제 동경의 대학졸업생에 대한 취직 설명회에 멀리 구주에서까지 대학 졸업예정자들이 몰려든 가운데 1백여 기업이 나와 0%성장 속에 오히려 좋은 인력을 얻겠다면서 열심히 자기 회사를 설명하는 사진이 유력 일간지 1면에 크게 보도되고 있다. 많은 인재확보 보다 더 주목을 끄는건 전공보다 국제화감각과 창의·판단·순발력이 뛰어난 건전한 상식인을 뽑겠다는 선발제도의 개혁이다. 결론부터 말해 이는 옳은 방향으로서의 변화다. 전공지식의 내구현상이 1백년일때도 있었지만 근래는 5년이란 학설도 있고,최근 들어서는 1년은 고사하고 5개월도 안된다는 것이 통설로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격변하는 시대에 몇년 또는 몇십년전 이론으로 황폐화되다시피한 연구실에서 공부한 전공실력으로 국제경쟁력을 갖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대학과 대학인(교수·학생)으로서는 듣기에 섭섭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기업은 프로의 세계다. 프로는 자기류의 창의성과 판단,그리고 순발력이 요구되는 세계다. 전이가가 높고 폭 넓은 시야를 가진 프로예비군이 필요한 곳이 바로 글로벌 체제의 기업인 것이다.
반드시 취직만이 전부는 아니지만,대학은 여기서 뼈저린 반성의 계기를 찾아야 한다. 영역다툼으로 학제연구 하나 제대로 못하고,현실과 동떨어져도 학과만 유지하겠다는 안일에서 벗어나지 않고선 살아남을 수 없게 세상이 바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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