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부터 사회교육(선진국 무엇이 다른가:1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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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더불어 노는법부터 가르쳐/공부보다 예절·질서 우선/잘못하면 회초리 안아껴
프랑스 국민학교에서는 지각 네번이면 퇴학당한다.
한번 지각은 경고,두번째는 벌로 숙제를 내고,세번째는 교장실에 한시간 동안 붙잡아두며 그래도 지각하면 예외없이 퇴학시키는 것이다.
독일의 부모들도 매를 아끼지 않는다.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이 매을 맞거나 벌서는 모습은 흔히 볼수 있는 장면이다.
일본의 경우도 엄격하기가 유럽 못지않다. 동경에 유학중인 학생 주부 손영희씨(34)가 유치원에 다니는 딸애 생일날 원생 20여명을 불러 저녁을 차려줬다가 겪은 경험이 좋은 예다.
우선 손씨가 놀란 것은 아이들의 식사 모습이었다. 『하도 조용히 앉아 먹어서 애들이 싸운 줄 알았다』는 것.
그러나 정작 손씨를 놀라게 한 것은 그다음. 음식을 너무 많인 덜었는지 다 먹기 힘들어하는 아이가 하나 있어 그냥 남기라고 했더니 함께 온 보모가 이를 끝내 말리는 것이었다. 아이는 결국 보모가 시키는대로 외톨이로 식탁에 남겨져 30여분동안 음식을 다 먹은 뒤에야 다른 아이들과 노는 것이 허락됐다.
자율성과 공동체 의식을 길러주는 것이 교육의 목표가 되고 있는 만큼 정해진 규범을 어길 경우 가혹하다 싶을 정도의 제재가 따르는 것이 우리와 구별되는 또 하나의 특징인 것이다. 체벌에 대한 가치 기준이 다른 것처럼 상을 주는 기준도 판이하다.
일본에 상사원으로 주재중인 최성묵씨(42)는 국교 5년생 아들이 보여주는 상장을 보고 잠시 의아해한 적이 있다.
복도에서 조심스럽게 다녔다고 「예쁘게 걷는 상」을 받아온 것이다. 아이들이 소개하는 상에는 기발한(?) 것 들도 많았다. 「예쁘게 먹는 상」 「인사 잘하는 상」 「친구에게 상냥한 상」 등. 우등상에만 익숙해온 우리와는 근본 자체가 다른 사고방식들이다. 선진국들의 「떡잎 교육」은 사회생활의 자세를 가르쳐주는 일부터 시작된다.
◎색다른 상벌기준에 “깊은뜻”/지각 네번하면 어김없이 퇴학/불 국교
일본 유치원 교육의 「첫장」은 『미안하다』는 말을 배우는 일이다. 아이들끼리 서로 부딪치게하거나 발을 밟게하는 등의 상황에서 사과와 답례의 표현을 끊임없이 반복시킴으로써 기초 예절을 몸에 배게하는 것이다.
독일 유치원생들에게는 우리식의 공부과목이 없다. 영재교육·속셈·피아노 등 기교부터 시작하는 우리와는 방향이 다르다. 한마디로 사회인이 되기위한 「기초」 부터 다져나가는 것이다.
베를린 슈판다우구 리터펠트담 유치원의 여교사 안드레아 슈베르트 피거씨(44)는 『유치원에선 특별히 무엇을 가르치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남들과 어떻게 놀아야 하는가를 터득시킬 뿐이다.
대지 5백여평에 연건평 2천여평 규모의 이 유치원은 교육기관이라기 보다 온갖 장난감과 놀이 시설을 갖춘 놀이터 같은 곳이다. 어린이들은 체육관이나 모래밭 등에서 함께 뛰노는 일이 전부다. 교사들은 지켜보다가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도와주기만 한다. 『가정을 떠나 사회(유치원)에 첫발을 디딘 아이들이 우선 배워야 할 것은 남과 어울릴줄 아는 일』이라는 인식에 토대를 둔 교육 방식이다.
「더불어 사는 법」에 대한 교육은 국민학교에 들어가서도 여전히 가장 중시된다.
『독일 국민학교 교육의 가장 큰 목표 역시 자율성과 공동체의식의 함양』이라는 피거씨는 『국어나 산수는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다.
방학때 일정기간 집을 떠나 합숙시키면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역할과 의무를 익히게하는 프랑스의 「콜로니 드 바캉스」나 일본 학생들의 무인도 채재훈련이 중요한 것으로 평가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현장 체험을 통해 공동체 의식이나 공중도덕을 배우는 것은 아예 정규과목으로 잡혀있다. 일본에서는 물건 사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 있다.
4∼5명씩 짝지어 돈을 거두게한뒤 상점에 가 물건을 사오게 한다. 무슨 물건을 사야되며 어떻게 의견을 수렴해나가야 하는지를 배우게 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전원 일치가 될때까지 계속 의논하게 한다. 물건을 사오면 구입 목적과 어떠한 합의과정을 거쳤는지 교사는 체크하고 평가해준다.
프랑스에서는 식사 교육을 시키는 시간도 있다. 「캉틴」이라는 학교 식당에서 테이블마다 5∼6명씩 둘러 앉혀 식사시키면서 필요한 만큼 덜어 흘리거나 소리내지 않고 먹게하는 교양인으로서 필요한 기본 식사예절을 가르치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또 토론 매너를 가르치는 것이 학교 교육의 중요한 일부다. 자기 생각과 다르더라도 남의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토론을 통해 의견을 모으도록 하는 것 등을 과목으로 정해 지도한다.
그렇다면 교육에 대한 평가는 무엇을 기준으로 삼는가. 점수와 성적은 의미가 없다는 뜻일까.
일본 국민학교 저학년생들의 성적표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행동발달 상황이다. 성적은 양호(요이),노력이 필요(모우스코시) 등이 두가지 밖에 없다. 이 평가에서는 친구들과 잘 사귀고 노는지가 가장 중요한 점검사항이다.
독일도 우리와 같은 방식의 성적 평가는 없다. 국교 1,2학년들의 국어공부라야 알파벳과 간단한 단어를 익히는 정도고 산수도 한자리 숫자의 덧셈과 뺄셈을 가르치는 것이 고작이다. 따라서 성적 보다는 생활 태도,교우 활동,장·단점 등에 대한 교사로서의 「의견」을 적어 보내는 난이 오히려 평가의 의미를 지닌다.
선진국들의 「겉모습」은 나라마다 제각기 다르다. 그러나 한꺼풀 안쪽에는 똑같은 「그 무엇」이 있다. 탄탄하고 견실한 사회의식이라는 뒷받침이다. 그 「탑」은 하루 아침에 쌓아진 것이 아니다. 「떡잎」때부터 꾸준히 갈고 닦아준 결과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떠한가. 과연 우리의 「어린 싹」들은 올바로 키워지고 있는 것일까.
◎일 소학교 「비우등생」 반장/“너만 잘하면 모두잘돼” 실세들이 맡겨/다독거려 함께 발전… 일인 집단성 구현
일본 동경 제2쇼가큐인 소학교 4학년 반장 하시모토군(10)은 어느모로보나 한국형 반장감이 아니다.
성적도 중간이하고,또래에 비해 덩치도 작고 내성적이어서 주위에 친구도 적다. 하시모토군은 반장으로 뽑혔다기보다 반을 끌고나가는 선두그룹 실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하시모토군이 잘하면 우리반 전체가 잘 되어 나가거든요.』
막후에서 힘을 발휘하고 조화를 이루는 일본 특유의 전통이 국민학교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학급을 끌어가면서 반장의 제안이 좀 모자란듯해도 어느 누구도 비웃거나 비난할 수 없다.
선두그룹에 의해 『너는 전체를 생각지 않는 일탈자』라는 낙인(?)이 찍히면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덜 익은듯한 제안일수록 학급 전원의 중지를 모으고 합의를 이끌어 내는데 힘을 합한다.
무라(촌)의식으로 표현되는 일본인의 집단성 후미그룹을 끌어올려 전체의 수준을 올리는 상향평준화의 산물이다. 그것을 일본인들은 어려서부터 교육을 통해 체득하고 있는 것이다.<김용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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