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독3주년>3.東西주민 반목의 골 깊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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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얌머 오씨」「베써 베씨」통일 3주년을 맞는 獨逸人들의 심리상태를 단적으로 표현해 주는 말이다.서쪽사람들은 동쪽사람들을「일은 안하고 한탄만 해대는 놈들」이라는 뜻으로「얌머 오씨」라고부르고,동쪽사람들은 서쪽사람들을「돈 좀 있다고 거 드름이나 피우는 잘난 놈들」이라는 뜻으로 「베써 베씨」로 부르고 있다.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통일은 됐지만 동서 주민사이엔 새로운 장벽이 생겨나 감정의 골은 점점 깊어가고 있다.「통일된지 3년만에동서 주민들은 통일 전보다 더 이질화 됐다」는게 舊동독 브란덴부르크주 레기네 힐데브란트 사회장관의 진단이다.
이같은 동서 주민간 이질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舊동독비쇼퍼로데의 칼리광산 광원들의 단식투쟁이다.경영합리화를 위한 생산및 인원감축계획에 대해 광원들이 단식투쟁을 벌이는가 하면 최근엔 베를린제국의회건물을 점거해 농성을 벌이기 도 했다.이들은 이를 舊서독에 의한 舊동독 枯死작전으로 인식,반정부 투쟁을벌이는등 정치쟁점화 했고 구동독 주민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이에 대해 구동독의 반체제 목사출신으로 사민당 부총재인 볼프강 티에르제는『구동독 일자리의 75%가 없어진 상태에서 이들은이제 더이상 잃어버릴 것이 없다는 각오로 극한투쟁을 벌이고 있다』고 설명하고 통일후 2등국민으로 전락한 동독 주민들 사이엔서쪽에 대한 적개심만 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동쪽 주민들이 이처럼 서쪽 사람들을 싫어하게 된데는 통일후 실업이 느는등 경제적 어려움때문이지만 재산권 반환문제도 큰 원인이 됐다.독일정부가 지난 49년 이후 구동독이 국유화한 재산에 대해 반환우선의 원칙을 적용함에 따라 서독인들 이 반환소송을 신청한 건수가 2백50만건에 이르고 있고 이를 마무리하는 데는 앞으로도 10년 이상이 소요될 전망이다.이 때문에 하루 아침에 집이나 토지등 부동산을 날리게 된 동쪽 주민들과 원소유주인 서쪽 주민사이엔 마찰이 끊이지 않 고 있다.이 문제는 특히 구동독 지역에 대한 투자마저 저해하고 있어 구동독 주민들은이래저래 고통받고 있다.
구동독의 비밀경찰 슈타지에 대한 협력혐의로 로타 드 메지에르구동독총리가 정계를 사실상 은퇴했고 만프레트 슈톨페 브란덴부르크주지사가 아직도 여론의 공격을 받는등 수많은 구동독 인사가 슈타지 전력에 시달리고 있는점도 동쪽 주민들은 불만이다.과거 청산이라고는 하지만「마녀사냥」의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구동독 공무원출신 2백20만명 가운데 1백20만명이 슈타지전력에 시달리고 있다.
이같은 구동독 주민들의 경제적 어려움과 장래에 대한 불안은 출산율의 급감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지난 89년 20만명에 달하던 신생아 출생수가 지난해에는 8만7천명으로 줄었다.특히 할레와 츠비카우는 80%와 70%가 각각 줄어든 것으 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구동독 주민들의 이같은 좌절감은 곧바로 외국인에 대한 혐오증으로 이어져 극우파 문제는 통일독일 최대의 정치적 현안으로 등장했다.외국인들이 자신들의 파이를 떼어 먹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경제적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잘못된 인식에서 통일 직후 구동독에서 시작된 극우파들의 외국인 테러는 이젠 독일 전역으로 확산돼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이 가운데 지난 5월 졸링겐에서 발생한 터키인 5명에 대한 방화살인사건은 가장 규모가 컸다.그러면 獨逸의 통일은 잘못된 선택 이었나.
최근 폴란드 총선에서 구공산당 후신이 제1당으로 부활한 것과는 달리 구동독 공산당 후신인 민사당에 대한 지지도가 1~2%에 머물고 있는 사실은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 구동독 주민들,나아가 독일국민 전체의 통일에 대한 인식을 대변하고 있다.
『통일을 빨리 이룩한 것은 많은 경제적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옳았던 결정이었다.다만 어려움을 줄일 수 있었는데 그것이 아쉬울 뿐이다.』 統獨 당시 내무장관으로 협상의 주역이었던 볼프강쇼이블레의 이같은 주장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베를린=劉載植특파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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