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우리선생님>23.신승평 교장의 난장판운동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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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운동회의 꽃」이라는 매스게임이 없다.『줄 잘 맞춰!』『번호붙여!』하며 일사불란한 동작을 요구하는 선생님도,응원점수를 올리자고 질서정연하게 단체응원을 하는 어린이들도 안보인다.운동장뿐 아니라 뒷마당.현관.체육관등 학교 구석구석에서 벌어지는 훌라후프 오래돌리기,고리던지기,큰 물통에 빨리 물 채우기,물속에있는 구슬 건지기,철봉에 오래 매달리기등 갖가지 경기 가운데 어느 경기에 참가할까 망설이는 어린이들이 우왕좌왕.각각의 경기가 벌어지는 둘레에 제멋대로 몰려있던 어린이들이 이따금 터뜨리는 환호성이 가을 햇살처럼 눈부시게 흩어진다.
「덕수 한마당」.올해로 세번째 이처럼 별난 운동회를 여는 서울 덕수국민학교 申勝平교장은 우스갯소리로「난장판 운동회」라 부른다.오는 10월8일로 운동회가 다가왔지만 도대체 운동회 연습이란게 없다.
하지만 난장판은 커녕 그야말로「철학이 깃든 운동회」다.언제부터인가 시작돼 우리 학교들이 별다른 교육적 의문이나 반성없이 거듭해온 운동회에 대해 왜 해야하는지,더 나은 방법은 없는지 근본적인 의문을 가지고 새로운 형태의 운동회를 시 도했다는 점에서 우선 그렇다.
『매스게임이란게 없는 운동회란 상상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지만그 목적이나 효과가 뭡니까.집단의식을 키운다고도 하지만,그런것수없이 하고 자란 요즘 어른들의 질서의식이며 공동체의식 수준을생각해보면 교육적 낭비랄 수밖에 없지요.』 상당수의 학교가 운동회를 꺼리는 또하나의 이유인「좁은 운동장」도 申교장에게는 설득력이 없다.「종래의 운동회 방식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에서 이미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을수 있기 때문이다.사실상 덕수국민학교 운동 장은 가로 40m,세로30m 정도로 웬만한 학교보다 훨씬 좁은 편.그러나 병설유치원생을 포함한 6백여명의 전교 어린이가 원하는 모든 경기에 직접 참가하며하루를 즐길수 있다.
종래의「보는 운동회」가 아니라「누구나 참여하는 축제」의 성격을 살린 이 운동회의 경기들은 차리리 놀이에 가깝다.예컨대「훌라훌라」라는 경기는 훌라후프를 오래 많이 돌리기,몸의 여러 부분으로 돌리기,걸으며 돌리기로 되어있다.「타잔」은 철봉에 매달려 빨리 건너가기,「하늘높이 날아라」는 각자 만든 비행기 등을멀리 오래 날리기다.
『이기든 지든,많이 참가하든,끝없이 망설이며 헤매던 어린이들은 그 나름대로 탐색하며 뭔가 배웁니다.시키는대로 움직이는게 아니라 자신의 생각에 따라 행동으로 옮기는 자율성도 익히겠지요.』 申교장의 얘기다.
〈金敬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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