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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체증 해소 지혜(선진국 무엇이 다른가: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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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과학적 관리… 좁은 길 넓게 쓴다/길 만들때 첨단설비 함께
민족 대이동전이 벌어지는 추석과 설날이면 서울∼광주 18시간. 휴가철 강릉까지 14시간. 퇴근때 한강다리 건너는데 1시간여. 시도 때도 없이 막히는 서울 4대문안. 매일 여의도광장을 채울만큼 늘어나는 차량들(서울시 차량증가 하루 평균 4천대).
교통개발연구원이 91년 기준으로 밝힌 교통체증으로 인한 손실 비용은 하루 1백33억여원,연간 4조8천억원이다. 매년 경부고속도로를 절반 정도씩 건설할 수 있는 돈을 길에 버리고 있는 것이다. 『땅과 길은 좁고 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으니 대책이 없지 않은가.』 정말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일까.
『싱가포르의 목을 죄는 길은 간단하다. 교통만 막히게 하면 된다.』 서울보다 더 비좁은 싱가포르의 차량등록국 책임행정관 유통분씨는 교통문제를 국가의 존망으로까지 직결시킬만큼 사생결단의 자세다. 시내 어느 지역에서든 고속도로까지 10분내 연결,나라 끝에서 끝까지 40분내 이동이 가능하다.
좀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싱가포르 항구에서 하역된 원자재를 실은 화물트럭들이 이 나라 최대 공단인 20여㎞ 거리의 주롱공단에 도착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평균 20여분 안팎. 공항에서 도심까지도 30분 남짓이면 족하다.
러시아워인 평일 오전 8시15분쯤 싱가포르 도심의 중심지인 오차드로.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달리긴 하나 막히는 일은 없다. 시내 주행속도 평균 30㎞. 뉴욕·방콕의 3배,서울보다 2배나 빠른 소통이다.
싱가포르의 교통관리는 우선순위가 명확하다. 우선 도로공급률·폐차율을 더한만큼 차량을 늘리는 아파트 채권입찰식 쿼타제를 도입,원천적으로 차량수요를 통제하고 철저한 수익자 부담원칙을 적용해 불필요한 차량사용을 억제하며 대체 선택수단으로서의 완벽한 대중교통 제공을 통해 자가용 이용을 최소화 한다는 것으로 집약된다. 대도시 교통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제기되는 싱가포르의 차량통행료.
오전 7시30분부터 10시15분,오후 4시30분부터 6시30분까지 적용되는 차량통행료는 시 중심가 2백10만여평의 ALS(제한구역)라는 울타리안에서만 적용된다.
통행료는 하루 오토바이가 1싱가포르달러(한화 약 6백원·월 20달러),회사차량 6달러(월 1백20달러),그외 차량 3달러(월 60달러)다. 75년 도입된 이 제도는 당초 카풀을 권장하기 위해 4명이상 탄 차엔 적용하지 않았지만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 89년부터 탑승자 숫자에 관계없이 통행료를 물도록 하고있다. 이 제도 시행으로 『시내 교통량이 40%는 줄었다』는 것이 유씨의 설명.
신경망처럼 연결된 대중 교통수단도 싱가포르의 교통관리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대중 교통수단 신경망처럼 연결/선진국 무엇이 다른가/러시아워에도 도심 통행료 징수/싱가포르/도착 예정시간 전광안내 꼭맞아/동경시내
집에서 간선도로망까지는 셔틀버스가 이용되고 간선도로망의 정류장은 지하철·간선망 버스로 연결된다. 이용객 숫자를 데이타로 삼아 러시아워에는 45인승,낮시간에는 20인승으로 버스의 크기까지 조절된다. 버스터미널·정류장 등 기간시설을 정부가 지어 민간버스업자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이같은 지원때문에 정부는 이용자 위주의 노선망·운임결정 등 교통정책을 주도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 동경은 자동차가 서울의 3배다.
지난달 27일 오후. 42년만의 최대의 태풍이 몰아쳐 대중교통이 마비된 상황에서 20여㎞ 떨어진 도심까지 가기 위해 택시를 탄 취재팀에 운전기사는 노선을 선택하라고 했다. 그가 가리키는 도로위 전광판에 표시된 목적지까지 걸리는 시간은 세가지. 일반도로로 57분과 1시간8분,고속도로 이용때 42분. 통행료 등을 더 물어 비싸지만 고속도로를 타기로 하고 시간을 재봤다. 예상 소요시간이 준수될지 의문스러웠다. 신기하게도 실제 걸린 시간은 41분.
총연장 2백25㎞로 동경 도심을 방사선처럼 얽고있는 수도 고속도로는 육상교통망의 중추신경이다.
물론 이 도로 또한 잘 막히기로 유명하다. 절대 통행량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와 다른 것은 교통체증을 최소화 하기위한 정교한 「관리」가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2백50m마다 설치된 감지기를 통해 수집된 교통상황은 컴퓨터 중앙통제소를 통해 분석돼 1분마다 6백22개의 각종 전광표지판을 통해 운전자들에게 제공된다. 시속 20㎞이하 도로는 붉은색,20∼40㎞는 오렌지색으로 나타나 「피해 갈 수 있게」해주며 사고발생지점·소요시간·고속도로변 주차장의 주차가능 차량대수까지 알려준다. 이같은 효율적인 관리로 수도 고속도로가 차지하는 도로율은 동경도내 전체의 12%지만 교통량을 25%까지 소화,일반도로 두배의 몫을 해내고 있다.
싱가포르나 일본의 예에서 볼 수 있는 이같은 교통관리 소프트웨어들의 비용은 어느 정도일까. 수도 고속도로의 히로히사 모리타 교통관제 기술과장은 『도로 전체 관리비의 5% 정도쯤 될 것』으로 추산했다. 싱가포르의 나라야난 도로·운송담당 부국장도 『도로를 건설할때 같이 설비하면 큰 비용은 안든다』고 했다. 문제는 그의 말처럼 「소프트웨어에도 투자가 필요하다는 안목」이다.
기존의 시스팀 외에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 또한 이들 나라의 공통점이다. 쓰쿠바 토목연구소에서 개발한 「라이트 가이드」시스팀은 구부러진 길에서 운전자 눈높이로 커브를 따라 점멸등을 설치,전방 2백m에 차가 접근하면 진행방향으로 점멸한다. 또 T자형 길에 설치된 가이드 라이트는 센서에 연결된 디지틀판에 「우측 1백m에 시속 50㎞로 접근」이란 문자가 나타나도록 돼있어 시야가 가려진 곳에서 접근하는 차량에 대비할수 있도록 해준다. 간편하면서도 큰 돈이 안든 이 시스팀은 일본 전역에 걸친 실용화를 앞두고 있다.
일본 건설성 산하 교통연구소 히로오 간자키박사의 『도로 효율 제공에 연구력이 집중돼야 한다』는 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양보다 질」이라는 말은 교통문제에도 적용되는 금언인 것이다.
◎일 자동 길안내 장치/4m이상 전국 도로망 CD롬 한장에/버튼 누르고 화살표 따라가면 목적지
항공기와 미사일의 항법장치를 자동차에. 지금 일본 전국을 누비는 승용차·트럭들은 이를테면 「굴러다니는」 비행기들이다. 항공기에서 볼 수 있는 자동항법장치(INS)의 원리를 응용,자동적으로 좌표를 읽어 지도대로 찾아갈 수 있는 시스팀을 갖췄기 때문이다.
팽이축(GIRO)처럼 중심점을 찾는 원리를 이용한 이 장치는 차량의 바퀴 등에 부착된 센서를 통해 측정된 차량의 위치를 자체 컴퓨터가 분석,운전석 옆에 있는 5인치 크기의 지도화면에 나타난다. 일본 전역 4m이상 도로 모두가 CD­ROM 하나에 최대 2만5천분의 1 축적으로 입력된 이 장치는 차량의 진행에 따라 화살표가 움직이며 현 위치를 알려주게 된다. 운전자는 초행길이라도 문제가 없다. 예를 들어 서울 가락동에서 부산 태종대를 가고싶다면 출발과 목적지점을 문자로 입력시키기만 하면 끝. 차가 출발하면 광역·지역별 고속도·국도·지방도로가 모두 화면에 나타나 운전자는 원하는 길을 화살표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쓰쿠바연구소가 개발한 이 장치는 현재 일본내 6천여만대 차량중 40여만대가 부착,이용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확산될 전망. 가격은 차량출고때 선택사양으로 30만엔(한화 2백40만원)정도며 2000년까지는 10만엔대로 끌어내릴 계획이다.
고속도·지방도로 등에서 차량의 속도가 빨라지면 버튼 하나로 주변의 거미줄같은 지선도로들은 지원진다. 이는 불필요한 화면으로 인한 운전자의 피로를 덜어주기 위한 것. 화면을 자주 보며 운전하는데 따른 위험을 감안,음성으로 안내하는 장치도 개발돼 병행사용을 앞두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실용화시킬 수 있는가를 묻자 쓰쿠바연구소 관계자는 『한국에는 (정교한) 교통지도가 없어 현단계로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해 순간 머쓱해지기도 했다.<김용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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