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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이종 예술가' 김형태의 圖詩樂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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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홍익대 회화과를 나와 몇 차례나 개인전을 연 화가이지만 그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1990년대 중반 황신혜밴드를 만들어 라이브 클럽에서 활동하면서부터다. 여기에 김아라씨가 연출한 '햄릿 프로젝트'에서 햄릿을 연기하기도 했고,'하면 된다'같은 영화음악 작업을 거쳐 영화 관련 글을 써온 지도 여러 해다.

이처럼 미술과 음악과 연기와 글쓰기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그가 최근 스스로 붙인 직함은 '무규칙 이종 예술가'. 무규칙의 이종격투기처럼 "서로 다른 장르를 존중하되 명예와 권력을 지향하는 규칙은 거부한다"는 취지다. 이런 김형태(38)씨가 첫 만화책 '곰 아줌마 이야기'(새만화책.8천5백원)를 펴냈다.

마티스와 피카소의 작품을 패러디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첫 만화책 ‘곰 아줌마 이야기’를 펴낸 김형태씨는 가수를 비롯해 연기자.화가 등으로도 활동했다. [최승식 기자]

주인공인 아줌마 곰의 정체는 수수께끼다. 정체불명의 보따리에 짓눌리기도 하고, 설거지거리만 쌓아놓은 채 그림칸에서 실종되기도 하는 아줌마 곰은 보는 이에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물론 그 표현은 만화적이다. 아줌마 곰이 마티스.피카소.고흐 같은 화가들의 명화 속 주인공으로 변신하는 대목에서는 슬며시 웃음도 터진다.

이 재주꾼의 욕심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김씨는 "재능이 있어야만 예술을 할 수 있다는 건 선입견"이라는 말로 기자의 추측을 막아섰다. 듣고보니 그랬다. 30대 초입에 뒤늦게 기타를 배워 무대에 섰을 때 그가 내세운 것은 누구나 예술창작자가 될 수 있다는 '아마추어리즘'이었고, 황신혜밴드를 비롯해 당시 붐처럼 만들어진 30대의 밴드들은 예술가의 자기 표현이 오래 연마한 기술에만 의존할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보여줬다. 설치미술의 퍼포먼스가 라이브 음악무대로, 가수의 발성이 연극배우의 대사로,화가의 그림이 만화의 컷으로 서로 넘나들며 소통할 수 있다는 것 역시 김씨 자신의 이력이 고스란히 보여준다.

'곰 아줌마…'는 본래 99~2000년 문학잡지'베스트셀러'에 실렸던 작품이다. 이제는 소설가가 된 당시의 편집장 박민규('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씨가 펑크난 다른 만화를 메우려 김씨에게 요청한 작업이 연재로 이어졌다. 한 컷 그림에 짧은 글귀를 곁들인 구성은 요즘 유행하는 인터넷만화나 에세이풍 만화를 연상시키지만 김씨는 "학창시절의 시화전을 떠올리며 작업했다"고 설명한다.

"중학교 때 문학청년이었어요. 어려서부터 줄곧 그림을 잘 그린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중학교 때 처음으로 저보다 잘 그리는 친구가 나타났죠. 상처받은 자존심을 만회시켜준 게 백일장이었어요. 선생님이 계속 시를 써보라고 하셨죠." 이어진 고교 시절에는 그도 잠시 만화가를 꿈꿨단다.

"미술반 선배가 허영만씨 화실에 있었어요. 저도 만화를 그려보내서 무당거미가 그려진 답장도 받고 그랬답니다." 그 꿈은 같은 캐릭터를 반복해서 그리고 만화 고유의 칸에 갇히는 작업이 체질이 맞지 않아 접고 말았지만 만화의 경계가 한층 폭넓어지는 시대 흐름 덕에 다시 빛을 보게 된 셈이다.

'곰 아줌마…'의 부제는 '김형태의 圖詩樂(도시락) 제1집'이다. '圖詩樂'은 황신혜밴드의 음악을 펴내는 인디레이블의 이름이자, 몇 해 전 기라성 같은 시인과 음악인을 모아 음반과 시집을 하나로 묶어 펴낸 '도시락특공대'에도 붙여진 이름이다.'글과 그림의 즐거움''글과 그림과 음악'으로 고루 풀이되는 이 말처럼 '곰 아줌마…'에도 싱글사이즈의 음반이 곁들여져 있다. "영화음악.무용음악.연극음악이 다 있는데 왜 책음악은 안 되는가"라는 게 김씨의 반문이다. 테크노 리듬에 트로트 느낌이 섞인 이 음반을 두고 그는 "내 만화를 보면서 들으면 제격"이라고 했다.

"훌륭한 예술가는 어려서부터 무진장 칭찬을 받고 자란 사람들이에요. 그렇게 만들어진 자존심이 1등, 최고가 되겠다는 의식을 낳는 거죠." 우리 사회에서 별 칭찬을 못 받고 커온 만화라는 장르에 대한 그의 애정이 엿보였다.

이후남 기자<hoonam@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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