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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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낯선 땅,낯선 사람(70)바람에 유카다자락을 날리며 여자가 뒤따라 오는 길남을 돌아보았다.
『뻔한 소리.또 젊은양반 데리고 나와서 쓰잘데 없이,저어기가조선이다.맹탕 귀신 씨나락 까는 소리나 해댔겠군.』 『잘도 아네.』 『내가 당해본 사람 아니유.몸뗑이야 떠나와 이러고 있다만 우리가 한시인들 고향땅을 잊겠냐.우리 이 뼛속에 고향마을 강물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어히구,단성사 골목 변사를 하지 왜여기까지 와서 탄가루나 캐고 있대.』 『저것도 주둥이라고 차고다니니.오늘은 내 힘이 없어서 참으마.』 후후 하고 소리를 죽여 웃던 여자가 길남을 바라보며 말했다.
『젊은 동포 아저씨… 반갑소잉.』 『전라도에서 오셨어요?』 『나야 팔도 안 돌아댕긴데가 없어예.』 경상도 억양에 길남이 피식 웃었다.
어느새 어둠이었다.불타는 것 같던 바다는 이제 잿빛으로 어두워져 있었다.산을 이루듯 늘어선 숙소 건물들에도 불이 들어와 있었다. 『난 이때가 젤 싫드라.』 『어떤 때? 보자,오늘이 열엿새니까 달도 좋겠다.합궁만 했다 하면 아들 낳을 길일인데.
』 『하이,아저씨도 큰일이네요잉.그 푼수 해가지고 요사한 생각만 해싸코 있으니.』 명국이 히히히 하고 웃었다.
『뭐가 젤 싫다는 건데?』 『사람이 민하기는.요렇게 해 떨어지는 때,이때가 젤 견디기 힘들다니까.』 해지는 시간이 견디기힘들다는 이 여자는 무엇을 하는 여잘까.길남은 바닷바람을 타고언듯언듯 스쳐가는 여자의 화장기 어린 냄새를 맡으며 가만히 그녀를 훔쳐보았다.유카다가 바람에 날리며 그녀의 몸매를 드러나게했다. 그녀의 몸매를 훔쳐보던 길남이 공연히 혼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이 섬 안에까지 흘러와 유곽에 몸을 담고 있는 조선여자가 있으리라고 길남은 생각하지 못했다.여자가 묻고 있었다. 『그래 약이라도 챙겨 드셨우?』 『약같은 소리 하고 있다.매나 안 맞으면 다행이지.우리 사는 게 그렇지 않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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