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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규장각 제터에 복원하자 -학자들,씁쓸한 지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1866년 丙寅洋擾당시 프랑스의 로즈제독에 의해 약탈된 外奎章閣도서의 반환을 앞두고 불타버린채 방치돼있는 강화도 外奎章閣을 복원해야한다는 여론이 일고있다.
外奎章閣의 위치는 경기도강화군강화면관청리 산302의2일대로 77년 보수작업을 끝낸「고려궁지」의 담장 뒤편의 넓은 평지.
현재 外奎章閣이 있던 곳은 지난해 11월 日帝때 세워진 강화종합기술학교가 불타버리는 바람에 부서진 건물과 숯덩어리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이 일대는 고려시대 몽고의 침략에 대항하기위해 高宗 19년(1232년)崔偶가 궁궐을 건립,1270년 松都로 다시 환도하기前까지의 궁궐터일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는 외침에 대비,피난시사용하기위한 行宮이 들어섰던 곳이다.
丁卯胡亂을 강화도에서 보낸 仁祖가 1631년 피난시 사용하기위한 行宮을 건립한이후 正祖때 통어영이 강화부로 옮겨오고 正祖3년(1782년)行宮과 태조.세조의 영정을 모셨던 長寧殿사이에있던 燕超軒을 헐고 서울 궁성에 있던 儀軌 玉冊 을 옮겨 6間크기의 外奎章閣이 만들어졌다(正祖「奎章閣志」).
서울大 규장각(관장 韓永愚 국사학과 교수)연구팀에 따르면 外奎章閣이 들어서 있던「江華行宮」터의 규모는 강화도가 조선조 국방상의 요지가 되면서 여러건물이 들어서 1만8천여평에 달해 현재 고려궁지로 지정된 곳은 전체터의 7분의1에 불 과하다.
丙寅洋擾때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 없어지고 이곳에 현재 남아 있는 것은 朝鮮시대 강화유수가 사용하던「明威軒」과 이방의 집무처인「貳衙」두 건물로 77년「전적지 성역화」사업때 주위에 돌담장을 새로 쌓아「고려궁지」라는 안내판과 함께 보존 지구로 설정돼 있다.
문화재관리국은『77년 성역화사업때 고려궁지터에 초점을 맞춰 이곳을 사적지로 지정하고 주변에 돌담을 쌓았다』고 밝히고 있으나 역사학자들은『조선조 행궁이 들어섰던 곳에 역사적 고증없이 아무렇게나 담장을 둘러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강화군청등의 자료에는 外奎章閣의 위치가 고려궁지 뒤편이 아닌옆쪽 옥수수밭으로 잘못 기록돼 있다.
91년 1월 外奎章閣을 현지 답사했던 서울大 李泰鎭교수(국사학과)는『파리국립도서관측은 外奎章閣의 소재가 밝혀진뒤 비단장정을 해 보관에 정성을 다하고 문서보관담당여직원은 도서반환에 반대,사표를 던지는등 애착을 보이고 있는데 정작 外 奎章閣 도서의 주인인 우리나라는 외규장각복원은커녕 그 흔적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방치하고 있다』며『복원이 어려우면 고증작업을 통해 안내판이라도 세워야 할 것』이라고 했다.
〈辛聖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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