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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의전 구체파악 길열어-佛의 외규장각도서 반환의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1866년 프랑스가 江華島를 침공(丙寅洋擾),빼앗아간 外奎章閣도서 3백40책중 1백91종 2백97책이 14일 韓-佛정부의합의에 따라 빠르면 올해안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귀국보고전시회」를 갖는등 우리품에 안기게됐다.
이들 고문서의 반환은 한국이 고속철도기종으로 TGV를 선정한데 따른 보답형식을 띤데다,반환방식도 소유권은 프랑스에 둔채 영구임대형식을 취해「약탈문화재의 출처국 복귀원칙확인」이라는 1907년 헤이그조약,그리고「전시하 문화재 보호의무 」를 지정한일련의 유네스코선언에 비춰보면 우리로서는 개운치만은 않다.
그러나 지금까지 어느나라든 약탈문화재를 소속국에 선선히 돌려준 예가 극히 드물었기 때문에 국제법상의 불법성을 따지기전에 이렇게라도 돌아온 것은 대단한 의의를 지닌다.
어쨌든 학계와 在佛동포,그리고 정부의 2년에 걸친 끈질긴 노력끝에 外奎章閣도서의 반환이 성사되자 주무부처인 문화체육부는 곧 서지박물학자를 비롯한 관련전문가들로 인수단을 구성,반환절차를 밟을 방침이다.
프랑스의 문화재보호법인「역사적 기념물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지정문화재의 경우 해외반출이 불가능하나 비지정문화재에 대해서는뚜렷한 규정이 없다.外奎章閣도서는 비지정문화재여서 양국간 合意각서만 만들어지면 바로 귀국할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문체부는 인수단을 파리로 보내 진품여부를 확인한 뒤 환수,서울大 규장각에 보관하는 한편 문화재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문화재 지정여부를 가려 이를 보관.전시하게 된다.
환수되는 고문서는 조선조 仁祖~憲宗간 왕위즉위,세자책봉,성혼의식,國葬등 나라에 큰 일이 있을때 후세에 본보기로 삼기위해 그 일의 始終 경과를 적은 儀軌가 대부분이다.
또 陵.궁궐.閣의 설치및 수리,서훈,왕의 영정제작,親耕등의 儀軌도 다수 포함돼 있다.
따라서 이 고문서들은 조선왕조의 주요행사와 그 집행방식,그리고 왕조의 살림규모를 소상히 파악할 수있는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이중「西闕營建都方儀軌」는 과거 서울高자리에 있던 경희궁의개축.보수공사에 관한 기록과 그림을 싣고있어 경희궁복원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책이다.
그동안 환수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온 서울大 李泰鎭교수(국사학과)는 왕실儀軌외에도 탁본.문집등 7점이 추가로 확인됐다고 밝히고 이 도서들도 같이 들어올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이번 반환과정중에 가장 관심을 모았던『直指心體要節』과『往五天竺國傳』(2점)은 대상에서 빠져 큰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고려 우왕때 간행된『直指心體要節』은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본이고『往五天竺國傳』은 신라고승 慧超가 쓴 8세기 인도여행기로 세계적으로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프랑스정부는 이 도서를 지정문화재로 분류,보관중인데『直指…』은 구한말 프랑스공사 콜링 드 플랑시가 수집해 가져간 것이고,『往五…』역시 1908년 프랑스학자 펠리오가 중국 돈황유적에서발견,파리국립도서관에 기증한 것이다.
따라서 이 두책은 전시 약탈물이 아니기 때문에 반환요청의 명분이 취약한 실정이다.관련전문가들은 비록 그렇다하더라도 이번 外奎章閣 도서환수에 맞춰 이 두책도 일시귀국,국민들에게 선보이는 방안이 강구돼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日.美서도 반환돼야” 外奎章閣도서가 파리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지난 75년 프랑스국립도서관 사서였던 朴炳善씨(62.現 콜레주 드 프랑스연구원)가 베르사유궁립도서관에서 이들을 발견,『朝鮮朝의 儀軌』라는 2백97권 목록을 단행본으로발간하면서였다.
이때문에 朴씨는 사서직을 그만두기도 했다.82년에는 교회사연구가인 崔奭祐신부가 佛해군자료중 병인양요 당시의 도서약탈부분을번역소개,학계의 관심을 촉구했다.이어 91년에는 서울大가 공식으로 프랑스정부에 반환을 요청 하는등 다각도의 노력끝에 환수가성사됐다.
학계는 이번 프랑스로부터의 문화재환수를 계기로 현재 日.美.
유럽등에 산재한 5만4천여점에 달하는 해외문화재의 반환을 위해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바라고 있다.
〈李憲益.李圭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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