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경쟁력 강화하자면(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재계가 14일 이례적으로 많은 대기업 회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무역흑자 1백억달러의 조기달성과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민간차원의 노력을 천명하고 나섰다.
대기업들은 그동안 신경제계획상의 대기업정책 방향과 금융실명제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웠고 적절한 투자대상을 찾기 힘들다는 이유로 대규모 투자를 직접 면담을 통해 정부와 대기업간의 경제활성화와 경쟁력강화 망설여왔다. 이제 그동안 대통령과의 필요성에 대한 교감이 이루어졌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그 예가 신경제 계획에서 역점을 두었던 공정거래법의 개정이 연기되고,조세감면법을 고쳐 감면대상을 대폭 축소하려던 방침도 바꾸고,10월중으로 예상되었던 금리자유화도 다시 연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대로 있다가는 국가경제의 입장에서 세계적인 규모의 경쟁에서 낙오되고,개별기업의 입장에서도 초일류기업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상실될지 모른다는 우려는 정당한 논리적 근거가 있다. 따라서 현재 정부와 재계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사실 그 자체가 긍정적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현재 한국경제의 장래를 걱정하는 시각 가운데는 문제의 본질,다시 말해 제대로 경쟁력을 배양하는 길이 무엇인가에 관해 혼란이 있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요즘은 누구나 국제경쟁력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소리는 유행처럼 하고 있으나 국제경쟁력이 무엇이며,어떻게 하는 점에 대해선 분명치 않다.
이 문제는 전경련산하에 국제경쟁력 강화위원회를 설치하고 구체적인 사업으로 열거한 1사1개 주력신상품 개발이나 비정상적인 경영관행의 개선 및 중소기업 지원책 등 다분히 캠페인적인 활동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점에서도 나타난다. 최근 국제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경쟁력의 본질은 정보·지식·인력이 하나로 묶여 중요한 요인이 되고,사회의 기반설비 확충 여부가 또하나의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자본·자원·기술과 같은 전통적인 요인은 국경의 의미상실로 그 의미가 전혀 달라지고 있다.
금융실명제 이후 경기하락을 염려한 정부가 정책의 기본방향을 인플레성장으로 바꾸고 있는 흔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하면 물가안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필요한 경쟁력강화의 기반구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경쟁력은 시장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기업의 자구노력이 있을 때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구 시대적인 정부지원과 독려로 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적절한 투자대상을 찾지 못하는 것이 더 큰 애로라고 본다면 정부의 할일은 사회기반시설의 확충과 시장의 경쟁구조 유지에 있다. 정부의 지원으로 기업이 움직이기에는 이미 우리 기업의 규모가 너무 커졌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