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평화실험(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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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30년 전쟁이 끝나게 된다. 1964년 PLO성립 이래 서로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증오와 피로만 관계를 맺어온 두 적대세력이 팔레스타인인들의 부분적인 자치안에 합의,곧 협정에 서명하게 되리라는 소식이다.
이는 금세기 후반 들어 공산체제의 붕괴에 버금가는 국제정세의 변화이자 냉전해소 이후 최대의 분쟁해결 사례로 기록될만한 긍정적인 사태발전이다. 동서의 대립구도에서 벗어난후 새로운 질서에서 기대됐던 평화 대신 세계 곳곳에서 인종과 민족적 갈등으로 유혈분쟁이 끊이지 않는 불안한 시기였다는데서 이스라엘과 PLO의 합의는 더욱 값진 것으로 평가된다.
이스라엘이 점령,통치해온 팔레스타인인들의 거주지역중 요르단강 서안 지역의 예리코시와 지중해연안의 가자지역에 대한 1단계 자치안으로 불리는 이 합의안은 5년간 과도적이고 시험적인 자치실시,이스라엘군의 철수 및 상호 경제위원회의 창설 등 3개의 문서로 구성돼 있다.
나머지 지역에 대한 자치권 확대는 합의안 서명이후 따로 협의를 시작하기로 되어 있다. 또 전체 회교도들의 관심사인 예루살렘의 지위에 관한 문제도 다음 기회로 미루고 있다. 우선 이스라엘과 PLO의 평화공존 원칙을 만들어 놓고 복잡한 문제는 PLO의 자치성과를 보아가며 해결해 나가자는 생각이다.
물론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 당장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최소한의 평화공존을 해야겠다는 화해에는 성공했지만 양측 모두 최종적인 목표는 다르기 때문에 평화가 완전히 정착되기까지는 상당한 진통과 일시적인 좌절도 따르게 될 것이다. 우선 PLO는 완전한 독입국가로 가는 과도적인 단계로서 자치안을 활용하려는 속셈인데 반해 이스라엘은 자기네 영향하의 자치국가거나 아니면 요르단과 팔레스타인을 합친 연방국가로 만들 구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일단 가자지역과 예리코의 자치가 실현된다 해도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데는 많은 난관과 시간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우선 당장 대두되는 문제만 해도 PLO내부와 아랍진영 국가들,특히 밀접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시리아와 요르단의 동의와 협조다. 지금으로선 이번 합의를 주도하고 있는 아라파트 PLO의장이 전폭적인 지지를 내부에서 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이스라엘 라빈내각도 내부적으로는 취약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번 실험은 성공해야 한다. 이번 시도가 실패하면 앞으로 중동평화는 더욱 어려워질뿐 아니라 무고한 시민들의 고통도 더욱 심해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해묵은 적대관계에 있었더라도 유혈분쟁이 아닌 대화를 통해 해결이 가능하다는 선례와 교훈을 남긴다는데서도 중요한 의의를 갖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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