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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몸사리기로 정치 실종(김영삼정부 6개월: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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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타율 체질화·대안제시 미흡/관도 군도 맑아졌지만 무사인일 부작용/방관세력 포용 개혁동참 유도가 급선무
새 정부 출범후 지내온 6개월간의 개혁은 1차적으로 부정부패 척결을 겨냥했다. 그렇기에 권력의 주변,정치권과 관·군 등에서 개혁의 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고 또 개혁적인 것은 아니나 변화라고 볼 수 있는 현상이 뚜렷한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정치권의 주역인 국회의원들은 지난 6개월동안 계속 살얼음판 위를 걸어왔다. 재산공개와 뒤이은 슬롯머신·동화은행 등 정치권과 밀착된 각종 비리사건들이 사정의 칼날앞에 노출되면서 적잖은 의원들이 명예와 함께 의원직마저 내놓는 가운데 위기감은 끊이지 않아왔다. 한동안 사정바람이 가라앉으며 평상심을 되찾는가 했더니 재산등록 마감을 기다렸다는듯 전격 단행된 실명제 실시로 인한 제2의 재산파동 가능성으로 정가는 다시 얼어붙고 있다.
그 결과 정치가 실종됐다는 것이 6개월이 지난 현 시점의 총평이다. 집권당인 민자당은 정부와 국정을 함께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정의 칼날을 쥔 대통령의 눈치보기에 바쁘다. 재산공개 물의에 따른 징계대상이 당의 심사특위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고위층의 지목에 따라 뒤바뀌고,여야 당직자 모임도 대통령의 지시가 있어야 이뤄지는 실정이다. 실명제 등 주요 정책결정은 일방적으로 통보받으면 그만이고 보완책을 논의하면서도 당의 주장이 혹시 이견으로 비춰질까 보안에 급급하다. 중진들이 주도했던 대부분의 소그룹모임도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거의 활동을 중단했다.
제1야당인 민주당 역시 새 정부의 사정바람에 몸사리기는 여당과 마찬가지였으며,주요정책에 대한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대안부재의 한계는 여전하다. 다른 군소야당의 모습은 지리멸렬한 정도에까지 이르러 실명제실시 긴급명령을 승인하는 국회 표결에서 명색이 제2야당인 국민당 김동길대표가 소속의원들의 동조없이 혼자 반대하는 촌극이 벌어질 정도다.
또 다른 부정부패척결 대상인 관가도 일반적으로 맑아지고 있다는 평가속에 원리원칙 준수로 능동적으로 일처리를 않는다는 비판도 아울러 받고 있다. 몸에 배었던 권위의식도 힘이 빠지고,줄지어 찾아오던 민원인들의 선물·식사·술자리초대는 물론이고 일선 민원창구의 급행료 마저 끊겼다. 당연히 지출도 줄이지 않을 수 없다. 총무처에서는 차관 10만원·국장 5만원씩으로 관행삼아온 경조사 부조금을 차관 5만원·국장 3만원으로 줄이면서 과장이하는 1만원 이하로 묶었으며,대부분의 타이피스트·환경 미화원들에게 얼마간의 가욋돈을 주던 인사치레마저 없앴다.
지금까지 「성역」으로 군림해온 군도 과거와 같은 일부 특권군인들의 질서문란 행위가 사라져 새 질서가 정착되는 개혁의 통증을 겪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각군 총장이 인사권 등 대부분의 권한을 행사하며 각군별 성역을 구축해온 관행이 사라지고 있다는 평이다. 다만 각군 수뇌부들이 문민통치자와 국방부장관의 결재를 기다리는 수동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좋게 말해 「문민통제」라고 할수 있지만 아직은 적절한 통제체계가 정착하지 못한 가운데 힘을 잃은 일부 군의 불만과 업무효율성 결여가 문제시되고 있다. 동시에 예상밖의 인사 등으로 고급장교 사이에서는 『나도 언제 밀려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따른 보신제일주의 사고가 두드러지는 점은 신정부가 빨리 해결해야 할 과제라 하겠다.
물론 부정부패는 사라져가고 있다는게 전반적인 분위기다. 3군 모두 인사청탁 등의 온상이었던 장교 부인회를 없앴으며,해군 참모총장은 장교와 부인들의 공관출입을 일절 금지하는 「금족령」을 내리기도 했다. 육사출신들끼지의 각종 모임도 대부분 자취를 감추었으며,「하나회」 등 군내 사조직은 형해마저 찾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개혁의 관건은 과연 이같은 현상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느냐는 것이다. 충격과 불안이 교차하는 가운데서도 「위로부터의 개혁」에 따라 부정부패의 가능성들이 하나씩 차단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의식의 한편에는 『집권초기의 일시적 현상』 『소나기는 피해가자』는 식의 무사안일주의,구시대적 사고가 잠재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같은 의식도 실명제 전격실시로 대통령의 개혁·부정부패척결 의지의 단호함이 확인되면서는 『과거와 다르다. 개혁이 일시적이거나 표면적인 선에서 끝나지않을 것이다』라는 인식으로 바뀌고 있다. 남은 것은 이러한 수동적·체념적 인식변화가 보다 적극적으로 능동적인 의식으로 전환되어 개혁이 체질화되는 것이다. 이제부터의 개혁,진짜 개혁은 대통령과 정부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해야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김영삼대통령이 방관자적 입장에 있는 여러 세력을 끌어안는 모습과 노력을 보여 그들을 개혁에 진정으로 함께 동참토록 유도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지적이다. 이와함께 국민은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의 모험에 우리 모두의 삶이 걸려있는 긴박감과,실패할 경우 모두가 어려워진다는 위기감을 공감해야 할 것이다.<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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