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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변동」일으킨 문민개혁(김영삼정부 6개월: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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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성역없이 윗물맑기 “사정태풍”/실명제 전격실시… 법·제도정비/여론업은 신권위주의 우려… 이제 「건설」 논돌릴때
김영삼대통령은 25일로 취음 7개월째에 들어선다. 변화와 개혁의 구호아래 집권한 김 대통령은 구호 그대로 이 나라에 개혁과 변화의 바람을 몰고왔다.
그 스스로 『취임 6개월이 마치 10년을 보낸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을 만큼 지난 6개월은 끊임없는 지각변동으로 점철됐다.
개혁에 대한 그의 확고한 신념과 밀어붙이는 힘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내는 사람은 이제 더 없을 정도가 됐다.
특히 금융실명제의 전격 단행은 그동안 제기돼왔던 「법과 제도에 의한 개혁」의 요구에 부응하는 본격적 시발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김영삼개혁의 내용과 형식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의 초기개혁의 특징은 「부수고 몰아내는」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위주의 30여년의 못된 행태와 구조악 그리고 그 기생적 정치인 및 관료가 사정의 대상이 됐다.
김 대통령은 먼저 공직사회를 목표로 부패척결 작업을 벌였다. 「윗물맑기」의 기치아래 재산공개파동으로 불어닥친 사정바람은 대통령 주변인사부터 기성정치세력,군,검찰에 이르기까지 거의 성역을 두지 않았다. 대통령을 두명이나 배출한 「하나회」 회원들은 군복을 벗거나 진급에서 탈락했다. 안기부·기무사 등 초법행위를 서슴지 않던 기관들은 영역이 대폭 축소됐다. 「칼국수 점심」으로 상징되는 솔선수범을 통해 기업인들의 정치자금 때문에 시달리지 않게 만들었다.
한편으로 그는 12·12를 「하극상에 의한 군사쿠데타적 사건」으로 규정하고 4·19혁명과 5·18 광주 민주화운동은 더욱 격상시켰다. 임시정부선열 5위를 모셔오고 구 조선총독부 건물을 헐기로 결정한 대목에 이르면 김 대통령은 그의 말대로 「국민의 애국심,나라의 정통성,민족정기」를 재임중 한껏 고양하려는 포부도 지니고 있는듯하다.
「부수고 몰아내는」것이 사회를 맑게 하고 나라의 근본을 세우는 밑바탕을 만들기 위한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인위적인 재산공개에 따른 일종의 「인민재판식 사정」과 「표적사정」에 대한 일부 비판이 제기됐고 인치논쟁을 부르기도 했다. 심지어는 『파괴하는 것은 누군들 못하겠느냐』는 비아냥과 『새 정부의 개혁프로그램이 뭐냐』는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기고 했다.
김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이런 비판에 대해 30년 적폐를 단숨에 쓸어버리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설명하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그 불가피성을 이해하는 쪽에 서있음은 각종 여론조사결과가 뒷받침한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이제 너무 과거 청산적인 지금까지의 개혁방식에서 벗어나 국가건설과 사회통합이라는 미래지향적인 개혁을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데는 이론이 없는 것 같다.
김 대통령은 「깜짝쇼」 「예측불가능한 정치」라는 등의 비판을 딛고 제도개혁에 나선 까닭이라 하겠다. 대통령 자신이 표현한바 개혁의 양대 축인 실명제 실시·공직자 윤리법 개정이 이미 이루어졌고,선거관련법·정당법·정치자금법 등 법과 제도면의 개혁으로 한국의 정치문화는 과거의 궤를 달리하게 될 전망이 확실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은 지난 6월3일 취임 1백일에 즈음한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책임제하의 국가 흥망성쇠는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고 할만큼 책임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헌법이 부여한 막강한 권한을 주저함 없이 사용하기로 작정한 것같다. 김 대통령이 대통령 중심제의 장점을 극대화한 모범 사례로 기록될지,아니면 일부의 우려대로 문민독재의 징후를 나타낼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김 대통령은 이제부터는 건설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그의 역량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극소수 부패한 기득권층을 단죄하고 대통령이 모범을 보이는 것만으로는 박수가 오래 계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과 정작 정치권에서는 알게 모르게 경이원지의 대상으로 돼가고 있는 현상도 큰 문제다.
경제·사회분야도 마찬가지여서,김 대통령이 말 많던 총독부건물을 해체하기로 결정했을 때 예전의 찬반양론이 환영일색으로 변한 현상은 작지만 간과해서 안된다는 지적도 있다.
국민에게 고통분담에 따른 이해를 구하고 의식면의 개혁까지 요구하려면 대통령이 혼자하는 개혁만으로는 역부족일 것이다.
김 대통령은 이제 새로운 「문민적 권위주의」의 위헌성을 인식,다 함께 더불어 할 수 있고 그렇게 하는 개혁의 정치를 창출해 내야한다.<노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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