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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 증언 청취 자료 수집에 온힘|하와이 90년(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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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자로 집단 이민한 한인들의 후손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하와이 교민 사회는 올해를 남다른 감회로 보내고 있었다. 올해가 그들의 선조가 하와이에 집단이민을 시작한지 꼭 90주년이 되는 해기 때문이다. 교민 사회는 올해를 기념하기 위해 작년부터 이민 90주년 기념 사업회(회장 도널드 김·64·사업)를 결성하고 첫 이민선 입항일인 1월13일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시작으로 연중 내내 40여개의 기념 행사를 벌이고 있다.
한인 교민 사회의 이러한 움직임에 따라 하와이주와 호놀룰루시는 올해를 「한인의 해」로 선포하고 90주년 사업회에 회계 연도 예산에서 5만 달러를 배정, 지원했다. 90주년 기념 사업회가 가장 역점을 두고 벌이고 있는 사업은 「이민사 발굴과 정리」.
『우리 이민사는 90년으로 비교적 짧은 편이지만 기록이 흩어져 있고 남아있는 것이 별로 많지 않아 역사 발굴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얼마 남지 않은 생존자들로부터 자료를 수집하고 증언을 청취하는 일에 전력투구하고 있습니다.』
도널드 김 회장은 50주년·1백주년 등 똑떨어지는 해도 아닌 90주년을 기념한다고 법석을 떠는 이유가 결국 1백주년에는 번듯하게 정리된 이민사를 편찬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민사 편찬 사업의 첫 번째 결실은 지난 12일 시사회를 가진 앨리스 최교수(65·하와이대 여성학과 퇴임)가 감독한 25분짜리 기록 영화 『사진신부』.
현재 타이틀 제작 등 마무리 편집만을 남겨 놓고 있는 『사진 신부』는 1910∼24년 사이 현지 노동자들과 사진 교환을 통해 하와이로 시집 온 여성들의 삶을 재조명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당시 사진 자료와 현재 생존해 있는 90세 이상의 할머니 10명의 증언을 통해 『인습과 대가족제를 벗어나 자유를 찾아온 여성들이 20년 이상 나이 차이 나는 남편을 건사하고 자식들을 교육시키며 다시 가족의 굴레에서 희생당했던 여성사』를 그려내고 있다.
이밖에 90주년 사업회는 지난해 말부터 중앙일보·한국일보 등 현지 교민 신문을 통해 사진과 기록 등을 모으기 시작, 많은 귀중한 자료를 발굴해냈다. 당시 생활상과 독립운동의 증거를 담은 사진자료 5백여종, 최초의 이민선인 미상선 SS갤릭호를 타고 온 사람 중 하나인 이경도씨의 1902년 대한제국 발행 여권, 독립 운동 자금으로 쓰였던 임시 정부 공채, 당시 독립자금 기부자 명단 등이 이렇게 해서 발굴된 자료들이다.
90주년 사업회는 이러한 사진 자료와 기록들을 최근 『그들의 발자취』라는 제목의 사진 집으로 출판키로 결정하고 출판사 선정을 마친 상태다.
이러한 역사 발굴 작업과 함께 90주년 사업회는 하와이에서 한국인 이미지를 향상시키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현재 하와이에서는 마약과 범죄에 한국인이 많이 연루돼 한국인 전체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떨어져 있는 실정. 실제로 이민 2∼3세의 경우 주 대법원장·정치인·교수·의사·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 비율이 어느 이민사회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어두운 면이 더욱 크게 보이는 세상 인심 때문에 한국인들이 전체적으로.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90주년 위원회는 문화·예술 행사에 높은 비중을 두고 끊이지 않고 행사를 개최해, 한국인을 문화를 사랑하는 민족으로 부각시키려는 노력을 하는 한편 장학기금 모금 등으로 2세 교육에 진력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호놀룰루=양선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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