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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도 실명제로 "몸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영화계에 금융 실명제 여파가 밀어닥치고 있다.
그 동안 외화 직배사들의 시장 확대와 방화 제작·흥행 부진으로 고전을 면치 못해온 국내 영화사들은 금융 실명제 실시로 자금난이 더욱 가중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금융 실명제 실시로 가장 직접적 타격을 받게 될 부문은 중소 영화 제작 업자들이다. 외화 직배사와 태흥·합동 등 10여개 대형 영화사를 제외한 80여 영세 영화업자들은 자기 자본이 거의 없이 지방 배급권 및 비디오 판권을 입도 선매해 제작비를 조달하는 한편 부족한자금은 사채 시장에 의존해왔다.
그러나 실명제 실시로 대개 무자료로 거래돼왔던 지방 배급 업자와의 거래가 이제 전면 노출이 불가피해지면서 지방 업자들이 거래를 기피, 현재 거래가 일체 중단된 상태다.
또 긴급 자금의 사채 시장 조달도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사채업자들이 중소업체가 발행한 어음은 아예 취급하지 않는데다 거래마저 꺼려 지방 배급업자나 중소 비디오 업체로부터 인수한 어음을 할인할 방도가 없어졌다는 것이 업계의 얘기다. 영화업이 소비성 서비스업으로 규정돼 정부의 중소기업 긴급 비상 자금 방출 대상에서도 제외되는 바람에 자금난을 타개할 방도를 찾지 못한 채 개점 휴업 상태다.
아직 부도사태나 제작 중단 등 실명제 후유증이 표면화되지는 않고 있으나 상당수 제작자가 계획을 연기하거나 재검토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형사 경우 자금사정이 나은 것은 사실이나 어음 거래 등에서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금융 실명제가 정착되면 한국 영화계의 고질적 병폐인 뒷돈 거래가 사라지는 순기능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영화계에서는 「오찌」라고 불리는 개봉 사례비 지급과 외국 영화 수입 때 계약서 상의 금액 이외에 가욋돈을 얹어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개봉 사례비는 개봉관을 잡기 힘든 영화사들이 영화 상영을 조건으로 제작비의 5%선을 극장주에게 건네주는 것. 수입 업자가 해외 외화 제작사에 보전금을 주는 관행은 홍콩 영화『황비홍2』의 수입을 싸고 국내 업자들의 경쟁으로 수입가가 치솟자 정부가 외화 수입가 한도를 1백만 달러로 제한하면서부터 생겨났다. 실제 수입가가 1백만 달러를 넘을 경우 계약서에는 1백만 달러 이하로 기재하고 차액을 뒷돈 형식으로 제공해 왔다.
이러한 변칙 거래는 자금 이동 상황이 투명해지면 대부분 사라질 것으로 보여 혼탁한 영화판이 상당히 건전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영화인들은 올 들어 이화 예술 필름의 도산. 모가드 코리아의 일시 부도 등 국내 영화 업계가 가뜩이나 어려운 상태에서 실명제 실시로 외화 직배사들이 더욱 영역을 확장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영화업 협동 조합은 재정 지원 방안 강구, 조세·금융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영화업의 제조업으로의 조속한 분류 변경 등을 요구하는 공문을 당국에 전달키로 했다. <곽한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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